
생각난다 그 오솔길
2005년 3월 중순. 한국 유튜브 서핑을 하던 중 얼떨결에 은희의 노래 <꽃반지 끼고>를 클릭한다. 1971년 당시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는 지금껏 꽃반지와 오솔길과 사랑했던 남자의 손을 메모리 속에서 더듬는다.
1955년, 남인수의 <청춘고백>의 어처구니없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당신도 잘 알다시피 유행가의 근본은 생각보다 감성을 피력하는데 있다. 조국을 잃은 슬픔 또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쓰러움보다 인간의 감성이란 누가 뭐래도 남녀의 사랑이 가장 으뜸이다.
상사병(相思病)을 사전은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라 풀이한다. 서로 相, 생각 思.
그렇다. 서로를 생각하는 병이 상사병이다. 이건 완전 정신과 영역이다.
‘나와 너’가 등장하는 디폴트 세팅이라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사랑이라는 드라마에는 늘 두 사람이 출현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결코 상사병에 걸릴 수 없다네.
‘Brook Benton’은 1961년 <Think Twic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대답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예스라고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당신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 거예요/ 내 행복이 걸려 있으니까요.”
이렇듯 남녀의 사랑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때가 미국에 있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Yes’라 응답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하거라, 하던 시절이.
그러나 자유분방한 미국에서 그런 보수성향적 의식구조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1963년. 시대의 반항아 ‘Bob Dylan’이 통기타를 튕기며 부른 노래 중,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이런 부분이 있다. “동틀 무렵 당신의 수탉이 울 때면/ 창밖을 보세요, 난 떠나고 없을 거예요/ 내가 길을 나서는 이유는 바로 당신/ 두 번 생각하지 마요, 괜찮으니까요.”
60년도 중반에 미국을 쓰나미처럼 강타한 히피들을 생각해 보라.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며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큰 공간에 몰려 살며 혼음을 일삼던 히피족들을. 그들은 ‘Bob Dylan’의 노래가사 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떠돌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또 있다. 남녀간 일어나는 생각의 소용돌이가. 전 세계의 팝송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Tayler Swift’의 2019년 히트곡 <I think he knows>.
“그의 발자국이/ 보도 위에 남겨져/ 내가 멈출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는 걸/ 매일 밤 그곳으로 내가 가는 걸/ 난 그가 안다고 생각해/ 차가운 유리잔을 감싼 그의 손/ 내가 그 몸을 내 것처럼/ 알고 싶게 만든다는 걸.”
‘가요 반세기’보다 훨씬 긴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가와 팝송에 반영된 우리의 ‘생각’들은, 연인과 함께 걷던 오솔길의 그리움, 죄 많은 청춘을 위한 고해성사, 세심한 사랑의 예식, 그리고 ‘너와 나’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두번씩이나 하는 수순을 거부하는 대담한 체험을 쌓기도 했다.
급기야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생각의 공감의식(共感意識)에 몰입하고 있다. 온통 자기 멋대로라니까.
ⓒ 서 량 2025.03.17
뉴욕 중앙일보 2025년 3월 19일 서량의 고정컬럼 <잠망경>에 게재
https://www.koreadaily.com/article/20250318171524375
[잠망경] 생각난다 그 오솔길
2005년 3월 중순. 한국 유튜브 서핑을 하던 중 얼떨결에 은희의 노래 〈꽃반지 끼고〉를 클릭한다. 1971년 당시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생각난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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