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을 보내기

서 량 2008. 11. 12. 20:52

 

봄도 겨울도 다 괜찮지만
당신은 가을만은 믿지 마세요
골 깊은 땅이 썩을 듯 말듯 젖은 낙엽으로 덮이고
우중중한 산 그림자며 황급히 도망가는 철새며
조석으로 변덕을 일삼는 가을만은 믿지 마세요

 

둥근 땅과 하늘의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수록
당신의 뾰족한 영혼은 더 초롱초롱해 질 거에요

 

가을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가을은 단지 타고난 소임을 다 할 뿐
보아라 거칠고 조잡한 풀잎을
우적우적 뜯어 먹는 저 허기진 사슴의 무리를
쪽빛 하늘을 잡고 늘어지는
달 덩어리보다 더 고집이 센
천근만근 무거운 구름 떼의 행로를
믿을 수 없으리만치 엄청난 당신의 애착심을

 

© 서 량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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