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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연인지

서 량 2008. 9. 7. 08:53

 

불교적인 사고방식이 우리의 생각이며 언어습관을 많이 지배하는 것이 틀림이 없어.

불교에 12인연법이 있는 거 알지. 12연기설(緣起說)이라고도 해요.

좀 고리타분하지만 당신 내 얘기 좀 들어 볼래? 하여간

 

-- 1.무명(無明); 2.행(行)>, 3.식(識); 4.명색(名色); 5.육입(六入); 6.촉(觸); 7.수(受); 8.애(愛); 9.취(取); 10.유(有); 11.생(生); 12.노사(老死) --

 

이렇게 열 두 개인데 그 뜻은  당신이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아.유식박식한 불교학자들이 뭐라 할지 모르지만 혹시 당신이 관심이 있으면 말이지별로 크게 어렵지도 않은 위의 한자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뜻이 떠 오를 수 있어.아이구~ 참, 불교교리에 저항심이나 반감을 품은 기독교인들은 어떡하냐구?히히히. 그런 사람들은 신경을 끄면 돼. 나 같은 사람은 독실한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단지 지적인 호기심에서 좀 잘난 척해보고 싶어 하는 짓이니까 그저 그런가보다 하면 돼요.

 

3번은 물론 안다는 뜻으로 얼추 해석하고 4번은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혀주는 소위 명명(命名)하는 짓이지. 왜 그거 있잖아. 당신 기억해? 김춘수의 꽃. 1연과 2연이 다음과 같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여간 뭐 그런 시가 있어.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시를 정열을 품고 안 좋아하지만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고, 하여간, 8번이 당신이 좋아하는 사랑얘기, 기타 등등...대충 12인연법이라는 게 생각하면 할 수록 생명현상이며 좀 과장하면 우주의 법칙에맞아떨어지는 법 같아. 아~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 그런 거야 아무렴 어때.

 

그건 그렇고 인연이라는 게 아주 불교적인 사고방식은 틀림이 없어요. 인만 있고 연이 없어도 곤란하고 인이 없는 연은 있을 수 없다는 둥, 얘기가 좀 까다롭고 골치 아프지만 우리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하고 자주 써. 그 단어를 자꾸 입에 담다 보면 꼭 일자무식한 촌무지렁이가 여자를 향해서 욕하는 것처럼 들린다구.

 

근데 당신 내 말 좀 들어 봐. 우연은 어떡할 거야. 세상에 꼭 인연만 있겠어 어디.필연도 있다구? 아이구~ 그건 좀 강압적인 개념처럼 들리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무슨 무시무시한 숙명적인 거처럼 들리네.

 

얘기가 어디로 빠질려고 저 사람이 이렇게 말을 펼치기만 하나 하며 지금 당신 좀 불안하지?그건 나도 그래. 사실은 당신과 내 관계는 인연일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생각을 좀 했단 말이지. 왜 그런 생각을 했냐구? 응. 그 대답이야 아주 쉽지.

 

지금 밖에 폭풍이 지나면서 나무가 흔들리고 심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거든. 더구나 캄캄한 밤인데. 왜 그런지 모르는데 나는 폭풍이나 폭우가 심한 밤에는 꼭 그런 생각을 한다.

 

알아요. 별로 그렇게 크게 생산적이고 영양가 있는 생각은 아니라니까 그러네.

 

© 서 량 200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