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낙엽과 비행기

서 량 2008. 9. 6. 06:40

          천길 만길 발 밑
          지구 깊은 내부에
          듬직한 막대자석이 버티고 누워
          힘껏 잡아끄는 중력에 나는 쏠린다

           

          대한항공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한밤에
          촘촘한 해상도로 컴퓨터 모니터의 파도는
          듬직한 막대자석과 맞붙어 치고 박고 싸운다
          물결 세차게 출렁이는 지구 위에
          내 어릴 적 비행기과자 모양의
          조그만 비행기 하나 달랑 떠서 꼼지락거린다
          달팽이보다 더 더디게
          그러나 한치도 틀림 없이

           

          담요로 몸을 덮고 직진하는
          나는 비행기와 한 몸이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순순히 중력에 복종하는 낙엽이다
          천길 만길 암흑 속 깊은 지구 내부에
          듬직한 막대자석이 버티고 누워
          나를 힘차게 잡아끈다
          농익은 단풍 색
          새빨간 비행기 몸체가 보인다
          나와 비행기는 둘 다
          오로지 앞으로만 질주하는 낙엽이다

           

          © 서 량 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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