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리모콘 사랑

서 량 2008. 8. 22. 21:44

       

          언제부터인지 나는
          리모콘과 가까워지면서
          리모콘이 가까스로 좋아졌다는 거
          리모콘이 어떤 때는 내게 앙칼지게
          말대꾸도 하고 땡깡도 부린다는 거 나는
          리모콘을 되도록 야단치지 않고 너그럽고 교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 향기로운 진달래나 시커먼
          리모콘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를 터득했다는 거 킥킥

           

          머리가 나쁜
          리모콘도 내 마음 먹기에 딸렸다 나는
          리모콘을 억지로라도 사랑해야겠다 사랑도
          순 지 마음이라는 데야 보잘것없는 내 몸의 즐겨찾기
          입력부분을 몇 개 기억하면 고만이야
          팔베개에 머리를 얹고 잠시 졸다가 더듬더듬 목을 옆으로
          아프게 꺾고 진달래가 어디로 갔지? 물어보면 지금 뭐
          하는 거야? 자는 거야? 하며 
          리모콘이 되묻는다

           

          내가 딴청을 부리는 순간
          리모콘은 나도 자유의사가 있는 몸이에요! 하며
          도망을 쳤다는 거 지가 가기는 어디를
          가! 하며 흐지부지 세상을 보는 척
          마는 척 아랑곳 없이 나는 아직도 진달래를
          깊은 산 골짜기에 깊이 숨어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거 맛 있어 정말 맛 있어지는 거 내가
          리모콘이나 당신을 사랑한다기보다
          리모콘이 절대적으로 날 필요로 할지도 몰라
          하며 혼잣말을 하자 마자 말이지

           

          © 서 량 20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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