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나는
리모콘과 가까워지면서
리모콘이 가까스로 좋아졌다는 거
리모콘이 어떤 때는 내게 앙칼지게
말대꾸도 하고 땡깡도 부린다는 거 나는
리모콘을 되도록 야단치지 않고 너그럽고 교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 향기로운 진달래나 시커먼
리모콘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를 터득했다는 거 킥킥
머리가 나쁜
리모콘도 내 마음 먹기에 딸렸다 나는
리모콘을 억지로라도 사랑해야겠다 사랑도
순 지 마음이라는 데야 보잘것없는 내 몸의 즐겨찾기
입력부분을 몇 개 기억하면 고만이야
팔베개에 머리를 얹고 잠시 졸다가 더듬더듬 목을 옆으로
아프게 꺾고 진달래가 어디로 갔지? 물어보면 지금 뭐
하는 거야? 자는 거야? 하며
리모콘이 되묻는다
내가 딴청을 부리는 순간
리모콘은 나도 자유의사가 있는 몸이에요! 하며
도망을 쳤다는 거 지가 가기는 어디를
가! 하며 흐지부지 세상을 보는 척
마는 척 아랑곳 없이 나는 아직도 진달래를
깊은 산 골짜기에 깊이 숨어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거 맛 있어 정말 맛 있어지는 거 내가
리모콘이나 당신을 사랑한다기보다
리모콘이 절대적으로 날 필요로 할지도 몰라
하며 혼잣말을 하자 마자 말이지
© 서 량 2008.08.22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코스모스의 속셈 (0) | 2008.09.04 |
---|---|
|詩| 8월 말 미루나무를 위한 윤도현 식의 랩(rap) (0) | 2008.08.31 |
|詩| 기도하는 예언자** (0) | 2008.08.13 |
|詩| 옛날 집 (0) | 2008.08.11 |
|詩| 안전수칙 (0) | 2008.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