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특별활동, 요새 말로 과외활동으로
미술반, 음악반, 문예반 세 곳을 열나게 드나들었지. 나는 그때 제일 마음에 드는 반이
미술반이었어. 크레용으로 질이 좋지 않은 종이에 북북 그림을 그리던 시절...
매일 그림 한 장씩 그리는 것이 필수사항이었다. 당시 문예반에서는
그런 압력이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간이 나빴던 문예반 담당 선생님은
별로 교육에 관심이 없이 눈의 초점이 늘 몽롱한 문학청년이었다.
미술대회 혹은 사생대회에 나가면 늘 나하고 앞을 다투었고, 나중에 대학 1년
후배가 된 피아노 치는 내과의사와 그 당시 둘이서 특상을 번갈아 받곤 했는데. 킥킥..
별로 상을 받지 못하던 동갑내기 한 친구를 나는 속으로 은근히 존경했다.
걔는 풍경화를 그릴 때 크레용으로 어쩌면 그렇게 사실과 똑같이 그렸는지.
이건 완전 사진인 거야. 내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너무나도
실물과 똑같이 그림을 그렸다, 나는 걔가 열나게 부러웠었어.
나는 그 능력이 없었거든. 아무리 애를 써도 내 그림은 좀 만화같이 보였다, 내눈에도.
왜 그랬을까. 왜 만화같은 내 그림이 특상을 받고 실물을 사진처럼 묘사한
걔 그림은 3등이나 가작을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고 송구스러워요.
요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사진처럼
정확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야.. 우리는 사진보다는 비록
좀 일그러지고 과장되고 사실과 많이 어긋난다 해도 결국
우리의 환상이 빚어내는 그림을 열나게 추구하는 거야..
당신도 알아듣고 공감해줄 수 있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환상으로 일그러진 영상이 늘 우리를 지배한다는 진실을.
© 서 량 200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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