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영악하게 미리미리 일기예보를 유심히 듣지 않았어.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 사실은 아직 현관 앞 단풍나무 단풍닢이
겨우 주홍색으로 좀 물들었다 싶은 요사이. 글쎄
아침에 일어나서 눈치가 좀 이상하더라니.
창밖을 봤더니 웬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꺼칠한 나무, 옷을 반만 벗은 나무에 흰 밍크코트를 입힌
광경이 집을 삥 둘러싸고 있는 거 있지.
이거 뭐야, 새벽에 눈이 왔잖아. 눈이 내리잖아.
백설공주 엄마가 바느질을 할때 창밖에 내리던 눈. 하얀 눈.
자세히 보니까 하늘에서 시치미를 뚝 따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더러는 함박눈. 더러는 싸락눈. 더러른 무슨 눈인지
잘 모르겠는 눈.
나는 눈이 내리면 그것도 첫눈이 내리면 콧노래가 나온다.
유행가도 아니고 클래식도 아닌 즉석에서 나오는 말도 안되는 멜로디.
오늘따라 아침에 좀 멀리 차를 몰고 가서 무슨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점심 때쯤 집에 왔더니 길바닥에 눈이 다 녹아 버린 거야.
언제 눈이 왔냐는 듯 안면 몰수하고 길바닥이 딴청을 부리는 거 있지.
나뭇가지에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들러붙었던 눈은 어떻게 됐냐구?
몰라. 나 자세하게 안 봤거든. 아마 다 녹았을 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진짜 귀신한테 홀린 기분.
© 서 량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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