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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버지의 방패연에 대한 추억

서 량 2021. 4. 5. 02:19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 나이 정도였을 때 나는 철부지 초등학교 2학년이였다.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듯이 지금 내 아들이 또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당신이 듣기에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내 아비와 나와 내 자식이 얼키고 설키는 것 같이 보이나? 아니지. 세 제너레이션의 서열이 분명한데 무슨 말씀 그런 말씀, 하면서 당신이 약간 눈을 치켜 떠도 나는 크게 할 말이 없는 걸.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멘델의 완두콩 부모관계 족보 그림처럼 위 아래가 분명해야 동물왕국에 대한 기본 질서가 서는 법이려니.

 

하여튼 그때 아버지가 대나무를 칼로 가늘게 깎아서 내 면전에서 방패연을 만드셨어. 어린 나이에 놀랐지. 아버지는 요술쟁이! 겁나는 능력을 가진 마술사! 전지전능한 내 아버지. 창호지에 달라붙은 까칠한 대까치까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척척 거침없이 만드셨다. 내 아버지는 방패연 제조의 달인이셨어. 평생 딱 한 번 내게 그 기술을 보여 주셨지만.

 

방패연을 바느질 실에 엮어 그날 하늘에 띄웠지. 추석 가까운 가을이었어. 점잖은 모습으로 창공에 떠서 이리저리 기웃둥거리는 방패연! 내 몸도 덩달아 하늘에 붕 뜨는 거 있지?

 

그러나 저녁 때쯤 연줄이 툭, 끊어져서 옆집 감나무에 걸렸던 방패연! 바람이 불 때마다 살아있다는 증거를 화를 내다시피 펄럭이며 보여주던 방패연! '아버지의 방패연'이라는 제목으로 그때를 그리는 를 한국 계간지에 발표하고, 시작노트 비슷한 잡담을 나누고, 그리고 수년 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어언간 10년이 지나갔다. 이날 이때까지 간간, 그때 바람결에 흔들리던 희뿌연 창호지 방패연이 부릉부릉 떠는 소리 들린다. 이쯤 해서 당신은 관심의 초점이 방패연에서 내 아버지로 옮겨지지 않을까 싶은데. 

 

© 서 량 2007.09.22 – 2021.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