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결에 이런 생각을 해 봤지. 뭐냐믄, 우리가 말을 할 때 늘 문장의 끝 부분에 가서 어미(語尾), 말꼬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데 신경을 무지하게 쓴다는 사실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금방 내가 끝낸 말도 신경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하고 말하면 아주 쌀쌀맞을 정도로 듣는이에 대한 공식적인 경의를 표출하겠지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다, 하면 사람이 당당하고 권위가 있게 들리는 거 당신 알아?
그러니, 내가 말을 어떻게 끝맺음을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내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 금방금방 감정상태가 달라질 거야. 달라질 겁니다, 달라질 거라구. 달라지는 거 있지. 당신도 양심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보라. 사람 마음이 얼마나 재빠르고 간사해야 한국말을 제대로 제때제때 격에 맞게 할 수 있을 거냐 말이냐. 근데 영어는 그냥 우직하게 저 할말의 내용에만 신경을 쓰면 되니 을마나 직선적이고 단순하고 남의 눈치를 안 살펴도 되는데. 안 그래?
반말은 또 어쩌냐 말이지. 내가 안 그래? 했을 때 당신이 안 그렇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아요 하는 대신, 안 그런데, 하며 말을 끝내지 않는다면 그건 말을 반만하고 말았다고 해서 일단 '반말'로 봐야 한다, 이거지. 영어로 직역하면 'half-sentence'라 해얄지 몰라요. 말도 안돼. 말이 안됩니다. 말이 안된다구요, 말이 안된다니까 그러네!
몰라요, 모릅니다, 모르겠습니다. 몰라, 모른다, 모른다요, 모른다네, 모르지, 모르지요, 모르거든, 모르노라, 모른다구, 모른다니까, 몰라라, 몰라라요, 하며 무수한 어미선택이 가능하다. 영어로는 그냥 'I don't know'하면 되는 걸 가지구 말이지.
당신이 모릅니다, 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쌀쌀맞게 잡아 떼는 것 같지, 그치? 근데 몰라, 하면 왜 그렇게 친근하게 들리지? 당신 그거 알아? 몰라? 모르나? 모를까? 모릅니까? 모르십니까? 모르세요? 모른당가?
© 서 량 2009.02.27 –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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