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 맞아야 하나 때려야 하나

서 량 2007. 9. 3. 05:53

 상대방의 말에 동의할 때 양키들은 약속이나 한 듯 ‘Right!’라고 외친다. 누구도 ‘Left!’ 하지 않는다. 올바른 길은 늘 오른쪽 길이라는 언어습관이 흥미롭지 않은가. 정치용어로 우익, 좌익 하는 것도 오른쪽 왼쪽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왼손보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더 이롭다는 학설이 있다. 심장이 가슴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위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 오른손을 사용함으로써 심장을 외적(外敵)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있게 한다는 이론이다. 왼손잡이가 왼손을 휘두르며 하는 칼싸움은 자기 심장이 상대방의 칼끝에 가까운 만큼 위험부담이 클 것이다. 어릴 적에 왼손으로 숟갈질을 하다가 할머니에게 야단맞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상대의 말에 동의할 때 ‘맞습니다!’ 한다. ‘맞다’에는「1.일치하다 2.맞이하다 3.구타 당하다」의 세가지 의미가 있다. ‘앞뒤가 맞다’는 1번, ‘손님을 맞다’는 2번, 그리고 ‘얻어맞다’ 할 때는 3번의 뜻으로 쓰인다.

 

 ‘right’의 반대말이 ‘wrong’이듯이 1번의 ‘맞다’ 반대말은 ‘틀리다’이고 3번 ‘맞다’의 반대말은 물론 ‘때리다’이다. 하던 일을 중단한다는 뜻으로 ‘때려치우다’ 하면 아주 강하게 들리고, 어림잡아 상황을 파악한다는 의미로서 ‘눈치로 때려잡다’ 하면 표현이 생생해진다. 그러나 일을 때려치울 때도 눈치로 때려잡을 때도 사실 폭력행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또, 심리적으로 당황하거나 고생한다는 의미의 ‘골 때리다’라는 우리말 속어에서도 현실적으로는 큰 불상사를 염려하지 말지어다. 무슨 일이 좀 골을 때렸다 해서 아무도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는다. 이처럼 ‘때리다’라는 단어는 어처구니 없는 과장법을 내포하고 있다. 혹은, 외적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의 주인공인 우리들이 그만큼 ‘맞는’데 익숙해진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맞다’의 3번 의미가 추상적으로 쓰일 때는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얻어맞다, 퇴짜맞다, 벼락맞다, 도둑맞다, 핀잔맞다, 소박맞다, 매맞다, 야단맞다」같은 말들은 하나같이 상서롭지 못한 인생경험에 대한 표현이다.

 

 영어에서 ‘때리다’라는 의미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beat’인데 이 말에는 ‘이기다’라는 뜻도 있다. ‘Nobody can beat us!’ 하면 ‘누구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라는 도전적인 발언이다.

 

 때리는 쪽은 가해자이고 맞는 쪽은 피해자다. 때리면 이기고 맞으면 진다. 가해자가 ‘winner’이고 피해자는 ‘loser’다. 이것이 바로 적자생존의 원칙에 시달리는 동물왕국의 비극이다.

 

 양키들간에 한 인간을 최대한으로 모욕할 때 ‘He is a loser’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전에 공식석상에서 최신 영어 슬랭을 쓰면서 자신의 견해를 "윈윈 시튜에이션(win-win situation: 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기는 상황)"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끼리 얘기지만 준엄한 역사의 심판 앞에서 패배자가 되고 싶은 정치가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과장해서 말하면 양키들은 옳고 그름에 상관 없이 승자가 되기를 원하고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비록 패배를 당해도 좋으니까 도리에 ‘맞는’ 행동을 숭상한다. 우리 역사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산간벽지로 귀양을 간 후 자기의 생각과 처사가 ‘맞다’는 일념으로 남은 여생을 소일한 충신들이 무릇 한둘이 아니다.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노무현 대통령이 요즘 국민들에게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맞고 있다. 자, 당신은 어쩔 것인가.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오그리고 잔다’는 우리 속담에 걸맞게, 그렇게 올곧고 방정한 생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항시 윈윈시튜에이션에 눈이 벌게져서 남들을 음으로 양으로 때려눕히는 가해자의 삶을 살 것인가.


© 서 량 2007.01.23
-- 뉴욕중앙일보 2007년 1월 24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