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은수저 도둑*

서 량 2007. 9. 1. 22:27

서울 특별시 성동구 하왕십리
도선동 테두리가 미음자로 생긴 한식집에서
빗장이 내 넓적다리보다 굵은 대문 지나 중문 옆
목욕탕 가마솥 물을 일 년에 몇 번 펄펄 끓여
궁둥이 따끔하게 온 식구가 순번대로 목욕을 했다
장마철이면 부엌 아궁이에 물이 콸콸 고였다

 

누가 밤에 은수저를 다 훔쳐 갔다
안방보다 수위가 퍽 낮은 부엌 흙바닥에
똥도 누고 갔다
내 얼굴 정도 크기의 거죽이 구득구득해진 똥
암흑 속 광채 음산한 은수저를 훔치는 전율과
미음자 테두리 한식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향한
물컹한 적개심을 진한 사랑보다
더 진하게 추구하던 사람이 남긴 똥

 

뉴욕 양키들도 화가 나면
아, 쉿!(Ah, shit!)한다 나도 곧잘 그런다
그럴 때 열 번에 한 번쯤은 성동구 하왕십리
눅눅한 미음자 테두리 한식집 부엌
컵에 꺼꾸로 세워둔 은수저 옆으로
편안히 누워 뒹굴던 깍두기 냄새가 살아나는데
그 도둑이 주고 간 똥 같은 냄새는 도통 나지 않는다


© 서 량 200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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