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다가
열 살 때 여름방학에 아버지에게
끌려간 본적지 할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
홀로 초가집에서 사시던 시골에서
어느 날 산에 혼자 올랐다가 확실히 알았어
사람이 죽었다는 게 바로 저런 거구나 하는 거
키 작은 소나무들 새살거리는 산언덕에
허연 광목천막을 쳐 놓고
어른들이 웅성웅성 막걸리를 마시다가
나한테 떡 몇 개를 줬다 나는 허기진 강아지처럼
맛있게 떡을 먹다가 뭔가 이상하더라 어렴풋하게
이제야 기억 나네 몇몇 얼굴이 수척한 남자들이
삼베 옷을 입고 있었던 거 천국과 지옥을
구슬피 맴도는 구름 몇 점 빼 놓고
그날 하늘이 참 맑았는데 갑자기 가냘픈 빗방울
질질 쏟아졌어 누군가 꿈결처럼 “여우비가 내리네!” 했다
그때 나는 화려한 꼬리치마를 입은 여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살결이 백옥 같은
내 엄마처럼 뵈는 여자로 둔갑하는 전설 속
그 착잡한 여자 생각이 난 거야 갑자기
© 서 량 200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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