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 강인한 코리언

서 량 2007. 8. 22. 10:43

 

영어의  ‘g’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 수상한 단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몇 개는 다음과 같다. 이 짧은 말들은 감탄사 혹은 간투사로 쓰이는 것이 통례이고 그 분위기에 역점을 두기 위하여 번거롭지만 문자로 표기할 때는 느낌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Gosh! Golly! My goodness! Gad! God! My god! Oh, my god! Gee! -- 굳이 우리말로는, 이런! 참나! 저런! 아이고! 아이구! 어쩌나! 하나님 맙소사! 어머나! 제기랄! 등등으로 옮겨진다.

 

‘Gosh!’ 같은 표현은 좀 거칠게 들리면서 ‘My goodness!’ 하면 아주 여성적이고 호들갑스럽게 들린다. 이 말이 아마 우리 말의 ‘어머나!’의 뉘앙스에 가장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이 간투사들은 ‘Gee!’만 제외하고는 모두 ‘God’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Gee!’는 그 원본이 ‘Jesus’, 즉 ‘지저스’의 첫 발음을 그대로 ‘지!’ 하면서 내는 소리다.

 

신을 노골적으로 들먹이기가 송구스러운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이렇게 Gosh! Golly! My goodness!, Gad!, Gee!, 따위를 연발한다. 특히 ‘Gee!’는 우리말로 ‘아이구!’ -- 경상도나 전라도 식으로는 ‘아이고!’에 해당할 정도로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God!’가 가장 속 시원하게 쓰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여자들이 ‘어머나!’ 하듯이 미국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God!’ 혹은 ‘Oh, my God!’ 라고 소리친다. 놀람, 호의, 불만, 경멸, 초조, 기쁨 등등 좋거나 나쁘거나에 관계 없이 강한 감정을 느꼈을 때 나오는 탄성이랄 수 있다. 기실, 한국 여자들과 미국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어떤 강렬한 감정에 처했을 때 문득 어떤 외부적인 소스에 자신의 감정을 의탁한다는 점이다.

 

‘어머나!’와 ‘Oh, my God!’에서처럼 한국 여자들은 어머니를 찾고 미국인들은 신을 찾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보호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강력한 외부적인 처소는 어머니와 신이다. 가족에 대한 결속감이 강하기로 소문이 난 이태리 사람들이 놀랐을 때 잘하는 말로 ‘맘마 미아’(Mamma mia)도 ‘내 어머니’라는 뜻이다.

 

한국 남자들은 어떤가? 그들의 입에서는 노골적인 욕설을 내뱉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제길’, ‘제기랄’(제길할), 또는 ‘젠장’이라는 간투사가 툭툭 튀어나온다. <국어 비속어 사전>(김동언 편저, 1999년)에 의하면 ‘젠장’은 ‘제기난장’(提起亂杖)이라는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다. ‘제기’는 생각이나 의견을 일으킨다는 의미이고, ‘난장’은 - 어지러울 난, 지팡이 장 - 한 사람을 자루나 보자기로 덮어 놓고 몸의 부위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함부로 막대기로 때리는 이조시대 때의 형벌을 뜻한다. 맞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속셈이 들어 있는 체벌행위다. 그러니까 한국 남자들이 무심코 ‘제기랄!’ 하는 어느 불안하고 초조한 순간에 그들은 ‘제기난장’을 치고 싶은 공격심을 부지부식간에 표명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 남자들은 체질적으로 공격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 외부적인 존재의 힘에 의존하는 대신에 모종의 적개심이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하는 배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 마이 가드!’ 하면서 미국인들처럼 전지전능한 신에 기대지도 않고 ‘어머나!’ 하며 모성본능에 귀의하는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놀람, 불만, 기쁨, 초조 등등 제어하기 힘든 인간감정에 처했을 때 ‘제기랄!’ 하면서 공격적인 간투사를 내뱉을 줄 아는 그들의 터프(tough)한 정신상태가 저 영광스러운 2006년 월드컵의 최전방에까지 대한민국을 밀고 나가지 않았느냐 말이다.

 

© 서 량 2006.05.15

-- 뉴욕중앙일보 2006년 5월 17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