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6

아욱국 / 김정기

아욱국 김정기 제목도 모른다 어느 간이역 나무 평상이 놓여있는 드라마를 보며 그저 저기 앉고 싶다. 앉을 자리만 보이는 눈으로 아욱을 다듬는다. 줄기는 껍질을 벗기고 이파리 하나씩 살펴보니 상처 없는 잎이 어디 있던가. 잎맥에 가는 줄이 있는가 하면. 조그만 벌레가 갉은 흔적이라던가. 바람결에 구겨진 흉터라도 남아있는 아욱을 풋내 빠지도록 주물러 마른 새우 넣고 조선된장 풀어 국을 끓인다. 들깨가루를 넣어야 구수하다고 대중 쳐서 얹고 아욱이 부드러워 질 때까지 약한 불에 놓는다. 이제 풋내나는 들판의 바람결도 삭아 아욱은 예감까지 익어 버린다. 드라마는 여자주인공이 풀이 죽어서 집을 떠나면서 약간 늘어진 눈꺼풀을 치키며 아직 남아있는 가을을 향해 손을 흔든다. © 김정기 2009.10.14

꽃병/오래된 교회 / 김종란

꽃병/오래된 교회 김종란 눈물 메마른 소금꽃 고통으로 일그러진 흉터 꽃으로 품으며 오랜 세월 은고(恩顧)한 무겁고 고된 두 발과 두 손 은과 금의 숲 소문의 바람 속 흔들리다 다시 허리를 펴는 장중한 붉은 빛 두 눈 지그시 감으며 끌어 안는 폭설 바람 그리고 눈부신 봄의 햇살 적막한 가을의 오후 수인(囚人)에서 자유인(自由人)으로 이슬 머금은 꽃으로 보이지 않게 보이시는 살아 있는 말씀 숨겨지며 드러나는 침묵, 그 세밀하고 부드러운 눈빛 © 김종란 2015.09.28

천사 2 / 김종란

천사 2 김종란 초록빛 푸른 유리구슬 굴러간다 빛이 어두움에 접하는 속도로 일렁이는 불 어슬렁 어슬렁 엇비슷 그러나 다르지 마음 불 어두움은 빛으로 맞물리며 불의 인자와 속성은 대리석안 제주의 구멍 숭숭한 돌 혹은 매력적인 눈빛 돌의 재질 안 심지의 숨은 타닥타닥 머무르고 있어서 불의 전차를 타고 불의 지하철을 타고 불의 수바루에 시동을 걸면서 불의 *아다지오를 들으며 어딘가에 삐죽 삐져나와 있을 흰 날개 깃 너의 조도를 궁금해한다 밝음의 비래가 반딧불처럼 어룽질 때 숨이 타들어가는 잠시 칠흑의 어둠이라서 숨겨지는 큰 흉터 그 절실한 눈빛 *알비노니의 © 김종란 2010.02.01

|詩| 아령과 비둘기

현미경 망원경 다 소용 없다 아령을 스승으로 삼기로 했어 아령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꿈에 나왔지 나는 응당 그와 관계를 형성한다 흉허물 없이 다 터놓고 지내는 관계 함부로 난잡한 말을 주고 받아도 괜찮은 그런 아령의 흉터에 심하게 신경을 쓴다 아령은 내게 막강한 권리를 부여한다 아령이 나를 서서히 장악한다 아령 양 가슴에 이윽고 튀어나오는 알통 회색 바탕에 무지개 빛 맴도는 사나운 비둘기 한 마리 푸드득 날아가는 순간에 바람결 아령 옆구리에 빨갛게 매달리는 딸기 하나 히말라야 정상에서 행하는 티베트 불교식 수행 잘라진 팔 얼굴 없는 남자의 토르소 아령은 초지일관이예요 입을 벙긋 벌린 생선 몇 마리가 슬금슬금 헤엄치는 하늘 속으로 당신이 서슴없이 © 서 량 2021.11.23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