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6

나무 등걸 / 김정기

나무 등걸 김정기 우리가 버렸던 그들은 말을 못했다 반세기를 눈비 맞고 꼼짝 안하고 있었다 뒤뜰에 나무 등걸 네 개가 서서 쨍한 햇살도 지나갔지만 이제야 돌아보고 몸에 난 구멍에 손을 넣었다. 바람에 날아든 어린 나무 뿌리도 만져지고 마른 기침소리와 말소리도 조그맣게 들렸다 억울했었다는 티도 없이 깊은 흠집에 흙을 받아들였다 그 흙에다 오이 고추도 심으며 달래 보는데 그들은 순순히 물을 받아 식물에게 주고 껴안아 죽은 나무 토막에도 속이 비어가는 세월동안 샌디 폭풍도 견뎠던 날들이 소리치지만 그냥 하나씩 삼켜버렸다 지금까지 온 길이 꿈결이듯 남은 날도 나무 등걸이 되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누구의 손길을 어디로 부는 바람을 모두가 시들어 떨어져도 나무 등걸엔 새싹이 © 김정기 2017.06.28

측백나무 頌 / 김정기

측백나무 頌 김정기 뒤 안에 측백나무 쓰러지던 밤 24년을 버려진 채 혼자 크고 늙어 마른버짐, 목마름도 몰랐었네. 진초록의 목쉰 노래도 못 들었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찰랑찰랑 봄볕이고 흰 다리 들어내 안겨왔었지. 젊은 가지에 바람이 들면 머리카락 휘날리며 그늘을 드리웠지 꽃밭을 일구고 푸성귀를 심으면서 거기 취해서 너를 잃어버렸어 그래도 말없이 엮은 한 생을 속뼈 드러내고 꺾고 말았지 이제야 폭풍을 안아보려던 그 몸부림을 알았네 밤이면 홀로 맞던 찬 서리를. 그날 크게 소리 지르며 쓰러진 주검위에 찬 눈물 한 방울 덮어 보내주마. © 김정기 2010.03.26

|컬럼| 391. 고흐를 동정하다

-- There is peace even in the storm. (Van Gogh) – 평온은 심지어 폭풍 속에도 있다 (고흐) 한 미약한 인간은 인정사정없는 폭풍의 괴력을 맞닥뜨리지 못한다. 열악한 현실에서 한 가닥의 평온을 구가하는 향취가 전해지는 고흐(1853~1890)의 짧은 명언을 곱씹는다. 폭풍이 거창하고 사나운 객관이라면 평온은 한 개인의 희망사항과 의지가 깃들어진 주관이다. 객관과 주관을 이렇게 갈라놓는 내 의도는 환경이라는 외부상황과 평온이라는 내부상태와의 상호관계를 조명하는데 있다. 고흐는 37살의 아까운 나이에 권총 자살로 힘겨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정신질환에 대하여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의견을 피력한다.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같은 굵직굵직한 병명들이..

|잡담|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연인지

불교적인 사고방식이 우리의 생각이며 언어습관을 많이 지배하는 것이 틀림이 없어. 불교에 12인연법이 있는 거 알지. 12연기설(緣起說)이라고도 해요. 좀 고리타분하지만 당신 내 얘기 좀 들어 볼래? 하여간 -- 1.무명(無明); 2.행(行)>, 3.식(識); 4.명색(名色); 5.육입(六入); 6.촉(觸); 7.수(受); 8.애(愛); 9.취(取); 10.유(有); 11.생(生); 12.노사(老死) -- 이렇게 열 두 개인데 그 뜻은 당신이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아.유식박식한 불교학자들이 뭐라 할지 모르지만 혹시 당신이 관심이 있으면 말이지별로 크게 어렵지도 않은 위의 한자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뜻이 떠 오를 수 있어.아이구~ 참, 불교교리에 저항심이나 반감을 품은 기독교인들은 어떡하냐구?히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