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엄지 손가락 엄지 손가락 -- 마티스 그림 “검은 배경의 책 읽는 사람”에게 (1918) 머리에 사과 하나 복숭아 하나 잎새 잎새 몇 개 실내는 오후 무더운 실내 책은 어디를 펼치나 백지 백지 새하얀 백지 여자가 눈을 비스듬히 아래로 깔고 생각을 멈추네 책갈피 사이에 놓이는 오른손 엄지 가벼운 엄지 詩作 노트: 책을 읽는 것도 책을 읽다가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는 것도 동작이다. 둘 다 동작이다. © 서 량 2023.07.07 마티스를 위한 詩 2023.07.07
|詩| 책과 파라솔 책과 파라솔 -- 앙리 마티스의 그림, ‘파라솔과 함께 책 읽는 여자’에게 (1921) 풀섶에 뒹구는 하늘색, 옥색 차양 넓은 내 모자를 보세요 국방색, 군청색 파라솔이 자외선을 막아요 당신 얼굴이 풍기는 복숭아 냄새 T셔스 앞 V자로 펼쳐지는 공간에서 책갈피, 책갈피 사이로 목걸이가 흔들린다 시작 노트: 으레 파라솔을 펴고 그 아래에서 책을 읽을 줄로 알았지, 이 여자가. 아마 흐린 날씨였겠지. 그래서 파라솔은 펼쳐지지 않았다. 책 읽는 여자를 훔쳐본다. 무슨 책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굵은 목걸이만 눈에 띌 뿐. © 서 량 2023.04.23 마티스를 위한 詩 2023.04.23
|詩| 혀끝 겨울바람에 뺨이 빨갛게 익은 채 안경 쓴 여자가 눈을 깜박인다 책갈피에 찡겨 있는 꽃이 뜨거워지자 금방 불이 난다 책이 그 자리에서 몽땅 다 타버렸다 혀끝을 아랫니 윗니 사이에 넣고 꽉 깨문다 그렇게 아프게 혀를 깨물면 자각심 경각심 튼튼한 경계심으로 내 인생을 채찍질하는 생각들이 판을 친다 판을 치면서 뺨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한다 나는 큰 명분도 없이 가슴을 쾅쾅 두드린다 800 파운드짜리 털북숭이 눈 흰자위가 왈칵 뒤집히도록 골이 난 고릴라처럼 벌떡 일어서서 © 서 량 2005.02.05-- 2007년 3월호에 게재 시작 노트: 오래된 책갈피 속 마른 꽃이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몰래 간직한 겨울이다. 어느 날 불꽃이 고릴라로 돌변한다. 이윽고 책에 불이 붙는다. 18년 전, 바람 부는 겨울 들판을.. 발표된 詩 2023.03.01
|詩| 함박눈, 책갈피, 그리고 장미* 차곡차곡 쌓이고 또 쌓여서 포근한 양털 융단이 되는 앞마당입니다 함박눈이 함박눈 위에 켜켜이 얹히는 중량감이지요 끝이 날카로운 책갈피의 반듯한 직사각형안에 차츰 씩 누적되는 따스한 지식이지요 지식이 겹치고 또 겹치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저 부드러운 곡선의 비밀 장미 꽃잎.. 詩 200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