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詩| 책과 파라솔

책과 파라솔 -- 앙리 마티스의 그림, ‘파라솔과 함께 책 읽는 여자’에게 (1921) 풀섶에 뒹구는 하늘색, 옥색 차양 넓은 내 모자를 보세요 국방색, 군청색 파라솔이 자외선을 막아요 당신 얼굴이 풍기는 복숭아 냄새 T셔스 앞 V자로 펼쳐지는 공간에서 책갈피, 책갈피 사이로 목걸이가 흔들린다 시작 노트: 으레 파라솔을 펴고 그 아래에서 책을 읽을 줄로 알았지, 이 여자가. 아마 흐린 날씨였겠지. 그래서 파라솔은 펼쳐지지 않았다. 책 읽는 여자를 훔쳐본다. 무슨 책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굵은 목걸이만 눈에 띌 뿐. © 서 량 2023.04.23

가을 책 / 김종란

가을 책 김종란 아직은 다 읽지 못한 책, 가을 다시 받아 들고 손끝으로 지난 지문들을 더듬어 익히며 옛 향기 흠, 흠 들이마셔 가슴에 품어보고 마음의 어둑한 서고에 가지런히 꽂아 보기도 하고 미쳐 넘겨보지 못한 채 멈춘 그 페이지 그 生生한 우울에서 시작해 크고 검은 눈망울이 뚜렷한 엉클어진 짧은 머리 큼직한 배낭을 매고 소매엔 약간 때가 묻은 분홍빛 손 꿈꾸는 너 다시 만나 불 붙어도 향기로운 가을 나무 곁을 익숙한 발자국으로 머무르던 곳 서성이던 곳을 지나치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 넘기는 오래된 책 석양의 시간은 멈춰진 듯 느리고 붉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 더욱 선명하게 가을은 변주된다 웅크린 어둠은 저 곳에 머물게 하고 오래된 이야기 책 빛으로 지금 지나는 우리에겐 처음인 이야기 이 아까운 이야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