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질 2

|詩| 혀끝

겨울바람에 뺨이 빨갛게 익은 채 안경 쓴 여자가 눈을 깜박인다 책갈피에 찡겨 있는 꽃이 뜨거워지자 금방 불이 난다 책이 그 자리에서 몽땅 다 타버렸다 혀끝을 아랫니 윗니 사이에 넣고 꽉 깨문다 그렇게 아프게 혀를 깨물면 자각심 경각심 튼튼한 경계심으로 내 인생을 채찍질하는 생각들이 판을 친다 판을 치면서 뺨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한다 나는 큰 명분도 없이 가슴을 쾅쾅 두드린다 800 파운드짜리 털북숭이 눈 흰자위가 왈칵 뒤집히도록 골이 난 고릴라처럼 벌떡 일어서서 © 서 량 2005.02.05-- 2007년 3월호에 게재 시작 노트: 오래된 책갈피 속 마른 꽃이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몰래 간직한 겨울이다. 어느 날 불꽃이 고릴라로 돌변한다. 이윽고 책에 불이 붙는다. 18년 전, 바람 부는 겨울 들판을..

발표된 詩 2023.03.01

|詩| 가상현실

내 밑바닥에 누워있는 당신의 진실을 보았다 한편의 시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눈을 감는 순간 매서운 채찍질과 빠르고 음산한 배경음악에 박자 맞추어 온몸으로 눈보라를 뚫고 질주하는 저 북극의 개, 울부짖는 늑대 떼보다 몇배 더 성급한 개떼, 내가 개 여러 마리로 길길이 둔갑하여 썰매를 끌고가는 흑백의 화면을 보았다 한밤중에 한껏 지구를 가로지르고 싶은 내 주인의 희열을 위하여 © 서 량 2017.03.30 --- 2020.06.07

202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