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8

|컬럼| 471. 지구 들어올리기

“내가 설수 있는 단단한 자리와 지렛대를 주면 나는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 Give me a firm place to stand and a lever and I can move the Earth.” 라고 말한 아르키메데스를 생각한다.  ‘내게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주면 나는 성격장애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병동직원에게 나는 속삭인다. 건방지거나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단,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나의 시간은 둘 다 충분히 길어야 한다는 점이 이슈다. 부모님 3년상이 우리의 오랜 유교식 전통이지만 현대에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 기간을 약정해 놓은 사회적 통념에는 정신과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의 심리적 아픔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데 그 정도 시간..

나비를 잡으려 한다 / 김종란

나비를 잡으려 한다 김종란 43 쪽 선박여행을 하며 피곤한 듯 의자에 깊숙이 앉아 바라보는 옛 시선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권태로워 하며 여행에 지친 눈 어깨 웅숭그리고 어둡고 서늘한 겨울 품 안 서성이다가 들추어보는 인도차이나의 녹색 대양 날개 잠시 접은 나비 둔중한 선박에 깃털보다 가벼웁게 내려앉는 백년 전의 항해 그의 마음 깊이 내려갈 수 있기를 그의 영혼이 울리는 종소리 들을 수 있기를 나비를 잡으려 한다 포충망에 걸린 나비와 자유로이 날아간 나비 선명한 문양으로 몽환적인 색감으로 그를 숲의 적막으로 불러드린 나비 융의 정신분석 사잇길과 혼돈의 세계를 아주 낮게 날으며 섬찟하게 달콤하게 무연하게 날아갔다 시간은 무작위적이었으나 © 김종란 2010.01.22

|컬럼| 347. 아내가 모자로 보이다니!

-- 시는 고삐가 풀린 감성이 아니라 감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것은 성격의 표현이 아니라 성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 티에스 엘리엇 (1919) 정신분석에서 쓰이는 자유연상 기법에 따라 시를 쓰려는 습관을 나는 오랫동안 키워온 것 같다. 어릴 적 처음 글짓기 시간에 지침으로 삼았던 ‘본 대로 느낀 대로’를 지금껏 따르려 한다. 무의식 속에 숨겨진 감성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앞뒤 문맥이 맞지 않아도 거리낌 없이 말하라고 정신분석은 권유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유분방한 생각의 흐름을 시작(詩作)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좀 위험스러운 일이다. 말의 흐름이라는 것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면 소통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감성이 너무 앞을 가리거나 앞장을 서는 말투는 시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

|컬럼| 251. 세 번째 굴욕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1925년에 '정신분석에의 저항'이라는 논문에서 인류의 극심한 자애심(自愛心)이 역사적으로 세 번의 굴욕을 당했다고 지적한다. '자애'를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자뻑'이라 해도 당신은 크게 반발하지 않겠지? 첫 번째 굴욕은 16세기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점잖게 버티고 앉아있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는 깨달음은 인류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었다. 둘째는 19세기에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에서 사람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원숭이의 자손이라 했던 신성모독적인 발언. 셋째로는 20세기 초에 우리 모두가 '리비도'라는 성애(性愛, sexual love)에 의하여 동물본능으로 살고 있다는 자신의 학설이었다. 이 굴욕적인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