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3

연두가 초록에게 / 김정기

연두가 초록에게 김정기 무릎 위로 꽃잎이 날아든다 내 자리를 비워 줄 차례를 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버티려 한다 사는 것이 어디 길가는 것처럼 되더냐 초록은 연두를 몰아낸다 하늘을 입에 문 초록은 잘 가라고 말한다 연두는 초록에게 막바지에 당신의 색깔이 파열될 때 나를 그리워하지 말라 나는 절벽을 걸어 내려간다 온 누리의 바람이 내 옷 깃에 스며들고 나는 새털같이 가벼워진다 무거운 초록을 입히지 않은 진득한 유월에 닿지 않은 몸으로 시간을 건너가는 눈부심으로 유유히 절벽을 내려간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의 긴 손을 잡고 © 김정기 2010.05.05

*일각수의 흰 뿔 / 김종란

*일각수의 흰 뿔 김종란 박물관 깊숙히 어두운 조명 아래 내비치는 너의 흰 뿔 내게로 와 그 흰 뿔이 자라나 협곡 깊이 자리잡은 푸른 돌들의 형제로 와서 신화의 음률, 낮은 울타리가 된다 유월의 **하얀 리본 나무 폭우 속에 내 마음의 비도 그쳐 하얀 리본 나무 음악의 문 소리도 없이 열려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나의 기타에 비스듬히 기댄다 너의 흰 뿔은 어둠 속에서도 평화와 신비의 빛 멈춘 시간 그 곳에 멈춘 신화 낮게 더 깊게 연주되는 사파이어빛 음률 유월을 지나는 하얀 리본 나무 *The unicorn Tapestries (Cloisters museum) ** Cornus Kousa © 김종란 2021.06.09

유월 꽃 / 김정기

유월 꽃 김정기 이해의 반이 지나간다고 꽃들은 아우성을 치는데 남의 연수 같이 낯선 오뉴월 볕 시간을 가로질러 온 울타리에 흰 꽃나무 눈송이 같은 꽃을 이고 소나기라도 지나는 날이면 나보다 먼저 몸 져 눕는 다 유월의 일기장 모서리가 흰 꽃잎에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칠월도 팔월도 있고 담에 기댄 장미도 울음 반 웃음 반 오후의 바람이 햇살 한 입 베어 물고 달리는데 어쩌란 말인가 또 다시 유월에 피는 꽃들마저 지고 있다니 다시 떠나간다니 이해도 조금씩 삭아가고 있다니 © 김정기 201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