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노랑 2

노란 나리꽃 / 김정기

노란 나리꽃 김정기 조간신문을 집으러 돌계단을 오른다. 칠월 아침 건너 집 현관 앞에 노란 나리꽃 무리져 피어 있다. 길고 긴 여름날 허리 잘라 숱 많은 숲 지나와서 엊저녁 읽은 책 한권 그 글자들과 섞여 노란 나리꽃이 비를 맞는다. 떨어진 꽃잎에 스며든 말소리 그 만남이 끈을 풀고 서로 이야기한다. 넘치는 기사를 훑어보고 허풍 떤 활자를 집어낸다. 나리꽃의 새 봉오리가 연노랑이었다가 떨어질 즈음엔 짙어지는 것이 이제야 내 눈에 선명히 띄는 오류들인가. 귀처럼 순해져야 하는 눈썰미인데. © 김정기 2010.07.18

입춘의 말 / 김정기

입춘의 말 김정기 땅속에서 벚꽃이 피어 속삭이고 있다. 진달래의 비릿한 냄새 스며들어 신부를 맞으려고 흙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작년에 떨어진 봉숭아 씨앗이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연노랑 웃음을 감추고 있다. 몸 안에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수 천 년 가두어 둔 바람이 새 옷을 준비하고 덜 깬 잠에서 흐느끼고 있는 벌레가 나비의 발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꿀벌의 몸짓으로 노래 부른다. 지하에 준비된 봄의 언어를 목청껏 뱉어보는 새벽 품에서 자란 새들이 날개를 달고 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을 물고 반드시 약속은 지키겠노라는 입춘의 말을 듣고 있다. © 김정기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