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시선 시선 -- 마티스 그림 “에트루리아 화분과 함께 한 실내”의 여자에게 (1940) 숲에서 산다 가을에도, 火山巖 화산암으로 만든 커다란 화분, vase 손잡이 서넛 밑으로 손바닥 여럿 테이블 위 노란색 주홍색 과일을 바라보며 숲에서 산다 여자는 詩作 노트: 실내에 항아리만한 화분이 있고 숲이 우거지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과일들이 맛있어 보인다. © 서 량 2023.11.01 마티스를 위한 詩 2023.11.01
양커스 기자회견 / 김정기 양커스 기자회견 김정기 바람에 마지막 번지를 둔 오늘도 우리 집 돌계단엔 꽃잎이 쌓입니다 그 무거운 외로움을 입술에 물고서 상처에 싹을 키우는 말없는 언어에 귀를 엽니다 나뭇가지위에서 선잠을 자고 지도에도 없는 강물을 밟고 오실 때도 어깨를 누르는 돌무더기 당신이 말없이 받아줄 때도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모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언제나 길 없는 땅에 길을 내고 따뜻한 것만 모여 사는 마을로 나를 데리고 갔지요 우리가 버렸던 사투리들이 몰려와서도 자꾸만 외면하는 사랑이라는 단어 끝내 알고 있는 당신을 가리고 마는 내 손바닥 몸을 숨길수록 드러나는 꿈속의 얼굴 머리칼만 보이는 미로의 연속입니다 영커스 기자회견은 무산되었습니다 © 김정기 2013.05.26 김정기의 詩모음 2023.02.03
두번 째 가을 / 김정기 두번 째 가을 김정기 손바닥 실금에서 피가 흘러요 그 줄기가 가을꽃으로 피어 따뜻하게 집안을 덮어도 안개가 안개를 몰아내는 길 돌아가는 길은 멀고 아득해요 죽지 않는 나무들이 몰려와 둑을 막아도 가을은 벌써 봇물로 쏟아져 들어와서 무릎 위를 차오르고 있어요. 두 손에 받든 하루의 무게를 공손하게 맑고 아름다웠던 당신에게 드려요. 손바닥 굵은 금에서 강이 흘러요 이 강은 소리 없는 곳으로 흘러가 가을 억새밭에 당도한대요. 천만가지 빛깔이 어우러진 보기만 하여도 기절할 것 같은 이 가을날이 이제 조금, 아주 조금 눈에 보여요. © 김정기 2010.11.02 김정기의 詩모음 2022.12.25
|詩| 중간 박수 스토리 중간에 해피엔딩이 들어서지 못해요 -- 만화영화 '마지막 유니콘, The Last Unicorn' (1982) 해피엔딩은 미남미녀가 고초 끝에 뜻을 이루는 엔딩 -- A happy ending cannot come in the middle of the story -- 당신이 그리는 유니콘이 완성되기까지 빛의 굴곡은 대수롭지 않지 스토리 중간에 얼굴에 붕대를 감은 고흐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겠어? 저는 못해요 달도 보름달이 좋은데 나는 보름달을 보는 순간 박수를 친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보름달은 완벽해 달기운이 넘쳐흐르네 상대 없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래 독백은 싫어 밤하늘에 버려진 하현달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네요 박수 끝! 몸은 떠나도? © 서 량 2011.12.9 – 2021.07.08 詩 2021.07.08
|詩| 맨손 세포분열이다 운명이다 부드러운 손길이다 가파른 손금입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금빛 비늘 사자머리 금붕어 가슴 지느러미 몸통 전체를 지배하는 맨손의 힘 손바닥이다 날아갈 것 같다 뻐근하다 손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세포분열이 일어나요 당신의 주먹도 뜨거워지고 있나요 지금 ©서 량 2020.10.10 詩 2020.10.10
|詩| 손바닥 어느날 아침 산들바람이 회오리바람으로 변했습니다 마치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바닥에서 큰 산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한폭의 화려한 풍경화입니다 별똥별이 흐르르 스쳐가는 황무지에서 놀라지 마십시오라고 누군지 귓속말 해 주는 듯한 그런 서늘한 바람이 내 손바닥에 일고 있습니다 박수의 따가움과 더할 수 없는 마음 밖으로 기어이 터지는 웃음처럼 눈물이 번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한 순간이다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어느날 아침 산들바람이 회오리바람으로 변했습니다 마치도 더 이상은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바닥이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 서 량 2000.11.18 (문학사상사, 2001)에서 발표된 詩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