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5

|컬럼| 404. 실언이 싫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negative symptoms’를 생각한다. 무언, 무욕, 무관심, 무감각, 무감동, 무쾌감(無快感)처럼 온통 ‘없을 無’가 들어가는 증상들로 짜여진 정서상태다. 그런 ‘네거티브 증후군’으로 뒤범벅이 된 환자 여럿을 앞에 놓고 그룹세션을 진행한다. 그들은 묵묵무언. 나는 허허한 언어공간을 메꾸기 위하여 입놀림이 빨라진다. 주입식 대화가 일방적으로 펼쳐지는 월요일 오후. 시간의 속도가 느려진다. 그들의 눈빛을 살펴보며 알아차린다.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얼추 다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분명히 인지(認知)하는 눈치다. 나는 확인하려고 애를 쓴다. “데이비드, 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대충 되풀이해서 말할 수 있겠니?” 그는 좀 생각 하다가 “약이요,” 하고..

|컬럼| 381. 그레고리

로버트가 또 며칠 동안 약 먹기를 거부했다. 병동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를 보였지만 다른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와 여유 있게 말할 짬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로버트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약을 거절했다는 해석은 맞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좀 알고 있는 편이다. 전에도 바쁜 와중에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 약을 끊으려 하지는 않았다. 로버트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심리학자와 소셜워커를 포함한 직원들 앞에서 아침 회진 시간에 그(*)와 대화를 나눈다. -왜 약을 안 먹으려 하지? *나는 돈이 많이 있어요.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피하는구나! *나는 보디 빌딩을 좋아합니다. -다시 대답해라. 왜 약을 안 먹지? 약을 안 먹으..

|컬럼| 362. 소통, 쇼통, 또는 소똥

병동환자 로버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 모두 스트레스가 심한 판국에 약을 안 먹겠다니? 아무래도 법정에 가서 판사가 내리는 결정을 따라야 되겠다.” 환자의 인권존중 때문에 강제 투약은 꼭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전에도 법원의 강제 치료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그는 걸핏하면 자기가 젊었을 때 보디 빌딩을 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셔츠를 들어올려 거북이 배처럼 희미하게 금이 간 복근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린다 맥칼리스터(Linda McCallister)의 저서, “I wish I’d said that, 내가 그걸 말했었으면”(1992)에 나온 대화방식 여섯 가지를 여기에 이렇게 간추린다. ➀ 귀족형 –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어린아이가 “임금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