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11

종려나무 숲으로 / 김종란

종려나무 숲은 흰 길이 끝나는 곳에 우거져 있다 눈을 감으면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어제도 이 만큼에서 끝이 났지만 그 길을 간다 예상치 못하게 눈에 상처를 입었다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종려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항상 있다 깊은 소리를 잣는 그늘 안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종려나무 숲 상처를 열고 그 안의 길을 간다 이 나무를 그려내려 했고 바라고 싶었고 없으면 지어내려 했다 상처 속 열린 길로 종려나무 안으로 한 손은 이미 떠난 소리를 잡은 듯 가장 느린 춤으로 © 김종란 2010.08.26

보이지 않는 꽃 / 김정기

보이지 않는 꽃 김정기 돌아서면 보였네. 다가서면 져버리고 세상 넘어 외진 땅에 숨어서 피어 나에게만 보였네. 따스하게 꽃술에 볕이 들어 꽃잎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은 눈물 먹은 산색 같아 어둠에서라도 설레기만 하였네. 보이지 않아 여리게 더욱 어질게 고여 오는 봉오리 열리는 냄새 사방에 묻어나고 언제나 내 뒤에서 피고 지는 꽃 피는 얼굴과 지는 표정을 금방 알아차리는 나만 볼 수 있는 꽃 그대에게 보여주려 하면 보이지 않는 꽃 그러나 환한 상처가 되어. © 김정기 2009.11.23

|詩| 관광여행

그 무엇보다 쓰라리게 감춰진 상처 전면 개방하기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권력의 내부구조 낱낱이 탐색하기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데야 피치 못할 숙명이라는 데야 YouTube 화면 하단에서 치솟는 답글, 답글, 답글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금단의 땅, 어두운 땅 어리숙한 내 아버지의 비밀을 관람한다 당신과 내 배경음악을 다 끄고 난 후에 시작 노트: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전면 개방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YouTube를 정성껏 시청했다. 비밀이 없어질 수록 그만큼 더 비밀이 쌓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비밀은 없을 수록 좋지 않을까. 남을, 남들을, '지배'하는데 쓰이는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애타주의를 표방한 엄숙한 속임수인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인가. ..

2022.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