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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수리공 / 김정기

꽃 수리공 김정기 바람에 시든 여린 꽃잎 하나 입김 불어넣는 나는 평생 꽃 수리공 가녀린 대궁 뼈에 주사를 놓고 사위어가는 촉수에 힘살을 보태어 잎 위를 긁은 칼자국을 꿰맨다 치과의사가 이빨을 수리하고 미장이 지미가 앞마당을 고치듯. 몸을 이루는 살과 잠과 적멸 죽음에 엉겨 찢어지는 꽃의 몸에 가는 바늘 비단실로 수놓아가지만 얼마나 갈런지. 우리가 함께 누리던 미움도 어루만지는 날이 오리니 슬픔이 없는 순간을 꽃술에 꿰어 목에 걸고 잠들지 못하는 세상에서 함께 나누어 철 따라 바람에 새 옷을 갈아 입히지만 보수도 없는 꽃 수리공 © 김정기 2014.04.17

사진 두 장 / 김정기

사진 두 장 김정기 우리 응접실에 사진 두 장 액자에 갇혀 있다 시어머님, 남편, 조연현 선생님 곁에 분홍드레스 떨쳐 입고 육영수여사 모윤숙 선생님 앞에서 시 낭송하는 스물아홉 살 꽃다운 청춘이었던 내 모습 바람이 몇 차례 불어 닥쳐 여기까지 밀려와 애틋했던 것 삭고 삭아 먼지로 남아있어 둘러보니 세상에 나 혼자만 남아있구나. 더운 달을 베고 누워 시간을 갉아 먹히고 내 이마를 적시던 빗줄기와 햇살 어둡던 날 꿈꾸던 새벽은 어디가고 그는 모자도 없이 먼 길을 떠났다 그래도 버티고 있는 튼튼한 살과 뼈 사진마다 색칠해 살아나게 하고 그는 아직도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빛살이다. 오늘하루 설레며 지금 환해서 어진 과거 끌고 갈 수레 하나 만든다. © 김정기 201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