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6

|詩| 내 그림자

어느 날 내 그림자가 휘청거리는 장면을 보았다 무형도 유형도 아니면서 연신 변덕을 부린다 누군가 저를 살펴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태평한 동작! 내가 점잖아지면 저도 차분해지고 내가 까불면 금세 팔짝팔짝 뛰논다 그는 찬 바람 몰아치는 봄밤이면 내 등때기에 바싹 들러붙어 내 육신의 명맥을 잘 이어주는 본심을 알 수 없는 동물이었다 지금 잠시 어디로 외출하고 없는 내 그림자가 그립다 시작 노트: 16년 전에 멋모르고 쓴 시를 지금 새삼 살펴본다. 그때도 내 동물뇌와 인간뇌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잘난 척하면서 분별심을 발휘하는 나는 또 누구냐. 나도 내 그림자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을 뿐. - 2023.02.28 © 서 량 2007.07.26 -- 뉴욕..

발표된 詩 2023.03.01

|詩| 봄이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꿈에 등장한다 봄이면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건네면 어디선지 많이 본 듯한 눈매 나른한 봄밤 날렵한 몸매, 흩날리는 꽃말 *mezzo piano 진폭, 가여운 진폭 살에 사무치는 꽃말, 최초의 꽃말 한참을 한껏 편안히 드러누운 자세였다가 당신이 벌떡 일어나 앉는 니은字 모양으로 날生鮮 펄떡거리는 꿈결 봄이 일구는 생생한 집터, 싱싱한 生時 *조금 여리게 하는 연주 기법, 음악 용어 시작 노트: 매해 봄이 오면 어김없이 꿈의 분량이 많아진다. 꿈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내게 말을 붙이기도 한다. 좀 불안할 때도 있다. 대화 내용은 무의미하거나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때는 대화를 하다가 일방적으로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꿈이다. © 서 량..

2022.02.19

|詩| 조팝나무, 봄을 맞다

조팝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말만 들었지 당신이 조팝나무, 조팝나무 하면 나는 왜 마음이 조급해지나 오래 전부터 조팝나무가 오밀조밀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과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나는 지금 조팝나무 건너편으로 보름달이 덜렁덜렁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 있는 중이야 맛 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하는 당신 목소리에 3도 화음이 들어간다 조팝나무가 봄밤 복판으로 납신납신 걸어 들어온다 해서 내 마음이 제아무리 조급해져도 죽자고 참는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 © 서 량 2011.05.23 – 2021.02.26

2021.02.26

|詩| 봄비의 반란

봄비의 숨결이 거칠다 조그만 사각형을 클릭하면 쐐기 모양의 체크마크가 고개를 치켜드는 내 컴퓨터 모니터에 봄비가 줄줄 내린다 봄비가 아프다 봄비는 순순히 자연의 법칙을 따를 뿐 당신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지 않다고 속삭인다 소프트웨어를 받아드리는 기본방침에 동의하는 봄밤에 봄비의 숨결이 깊어진다 봄비의 잔물결이 참 좋아요 봄비의 어깨가 체크마크 모양으로 한쪽으로 치우치다가 불현듯 치솟는다 나를 한사코 거부하듯 봄비가 지붕을 탕탕 때리는 봄밤이면 © 서 량 2020.02.29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