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3

물감옥 / 김정기

물감옥 김정기 물속을 걷는다 집안에서도 어디를 가도 물 컴퓨터 앞에 앉아도 물이다 헤엄도 못 치면서 물에서 살다니 걷어내야 할 거품도 껴안고 헐벗은 말들만 뛰노는 광장에서 하루해를 적신다 허둥지둥 달려온 길만 햇볕을 쬐고 아득한 것들만 모여 사는 동네에 아직도 낯설기만 한 물감옥의 주소를 쓴다 어디 까지가 물길이고 바람 길인지 분간 못하는 지점에 와 있구나 물결이 바람이 되어 밀어 닥쳐도 여기는 따뜻하고 온화하다 어둠의 척도도 잴 수 없는 물 속 그래도 당신은 여기까지 따라와 내 등에 물기를 닦아주고 있다 언제까지 물 안에서 대답하지 못하는 세월의 등마루에서 조금씩 잠들어가고 있는 의식세계에 연두 풀잎 한 잎 눈앞에 자란다 © 김정기 2018.08.21

불쏘시개 / 김정기

불쏘시개 김정기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헤매고 있으면서 구겨진 모국어를 껴안고 흐느끼면서 문우들에게는 불붙은 꽃이 되라고 높게 키운 불에 눈을 뜨라고 입 다문 그대의 입이 열린다면 몸으로 성냥을 긋고 나를 살라 불길을 만들 수 있다면 산이 부서져 피리가 되는 아궁이에서 젖은 그림자를 말리며 은하가 되리 물결이 되지 못한 물은 강 밑바닥에 가라앉아서도 노래 부르며 타올라 가리, 가랑잎 되어 꽃으로 밀봉하여도 불꽃이 되기 위해 헝클어진 말들을 함께 추려 빗기자고 활활 타는 뜨거움으로 시간을 새길 수 있고 세계 곳곳을 달굴 수 있고 이제 빛나는 별들이 되고 있는 그대들 위해 한줌 재로 조용히 삭으러지리 © 김정기 2017.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