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 5

겨울 포도 / 김정기

겨울 포도 김정기 몸을 핥는 땅은 섬뜩한 칼날이다 맨살 위에 새겨진 황토 흙의 흠집이다 허물 벗는 세포들의 몸부림에 흰빛 하늘이 내려와 어깨를 덮는다 돌아서는 지구의 혓바늘에 소금을 뿌리며 굳은 것은 이렇듯 쓰라린 것이다 아리고 뜨거운 것이다 살갗으로 데운 시간이 질척인다 침묵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떠나는 그대의 언 옷을 부여잡고 산 위에 떠 있는 노을을 적신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겨울을 말린다 © 김정기 2010.12.22

|詩| 가을의 난동

심지어 캄캄한 우주 깨알만한 은하수까지 움켜쥐는 엄청난 기력입니다 떡갈나무들이 허리 굽혀 옷을 벗는다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추억, 추억 전신이 땅거미 저녁 빛, 오렌지색 황혼 빛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몸부림, 몸부림이 목숨을 거는 모습이다 슬픈 기색이 없이 눈물 따위 글썽이지 않으면서 심지어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깁니다 시작 노트: 옛날에 써 두었던 시를 혼쭐나게 많이 뜯어고쳤다. 시를 쓰다 보면 그저 만만한 게 계절을 주제로 삼는 짓이다. 특히 봄이나 가을을 우려먹는다. 전에 이라는 시를 쓴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다. 맞다, 맞다. 계절은 내게 반란을 이르키고 난동을 부린다. 그런 어려움을 섭렵하겠다고 덤벼드는 나도 참, 나다. © 서 량 2008.10.14 – 2022.11.17

2022.11.17

|詩| 대천해수욕장

11살쯤 때 대천해수욕장, 당신이 등허리 따끔한 타이어 고무 튜브를 타고 둥실 두둥실 떠 내려 가는 거지 파도에 밀리고 밀려 유년기 평화에 씻겨 해변이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면서 당신의 의식도 점점 깊어지는 거지 生을 들여다보는 공포와 부모 친구 사랑 모두 차가운 물살에 휩쓸리는 여름 한복판 멀리 멀어진 해변과 당신의 몸부림을 가느다란 거미줄이 이어주는 현실과 꿈을 맨가슴으로 판가름하는 당신이 힘이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지 11살쯤 때 대천해수욕장, 당신이 등허리 따끔한 해변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이 지금껏 둥실 두둥실 떠내려 가고 있는 거지 가면 갈 수록 더 깊어지는 검푸른 바다 속으로 © 서 량 1994.08.02 첫 번째 시집 (문학사상사, 2001)에서 수정 - 2021.07.30

202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