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 7

|詩| 숯검정 강아지

갈색 머리칼이 쑥쑥 보랏빛 하늘로 뻗치는 여인아 콧등에 손가락을 슬쩍 대는 순간 아버지 본적지 초가집 마당 노적가리 밑 코끝 뭉툭하고 뱃살 폭신폭신한 그 옛날 숯검정 강아지만큼 갈색 체감온도가 쑥쑥 보랏빛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여인아 날개 접은 나비처럼 적막한 귀밑머리 아래로 땀을 뻘뻘 흘리는 내 여인아 시작 노트: 프랑스 화가 모네는 1890년과 이듬해 1년 사이에 노적가리 그림을 서른 몇개를 그렸다 한다. 내 나이 열 살 때 할머니가 홀로 사시던 경기도 농촌 초가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거기에 숯검정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워리였다. 매미 소리 요란한 집 마당 노적가리 밑에서 워리와 놀았는데 참 즐거웠다. 모네 그림에 나오는 노적가리와 비슷해 보이던 삼각형 모양의 짚풀더미였다. © 서 량 2005..

2023.03.01

|詩| 옆집

막다른 골목길에서 어린애들이 뛰노는 장면이야 옆집 사람이 집에 없는 저녁 녘 응접실에서 알토 색소폰 소리 들리나 봐요 입술이 아프게, 아무래도 입술이 갈라지도록 고음을 처리하기가 힘이 들었던 모양이지 바람 부는 대로 어쩜 박자도 척척 맞게 머리칼을 휘날리며 어린애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건 아주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었어 비브라토가 가을 햇살로 일렁이면서 더더욱 스멀스멀 내 앞섶을 파고드네, 나는 중저음의 떨림이 좋아, 작은 실수로 앙칼진 소리라도 내면 절대 안 된다, 하는 듯 알토 색소폰 구성진 멜로디가 울려오는 곳이 꼭 옆집 응접실 같아요 © 서 량 2019.08.17

202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