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19

|詩| 맨해튼 2020년 4월

맨해튼 2020년 4월 당신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 안달이다. 낙동강 언저리에 흩어지는 허쉬 초콜릿 냄새. 철모에 담겨 보글거리는 라면에 얹혀 금방 익는 달걀 노른자. 군대 냄새 방부제 냄새를 기억한다. 당신은 맨해튼 브로드웨이 언저리 길거리에 간신히 간신히 주차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 무서워하며 마스크를 쓴 청년이 자전거를 유턴하는 맨해튼  길거리 기록을 남기려고. 詩作 노트:간신히 간신히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을 보냈다. 무서움이 삶의 원동력이 되던 시절. 군대시절과 비슷하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더니. © 서 량 2024.04.08

|컬럼| 467. 시니어 모멘트

노인네들은 겸손하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은 본능적 몸가짐이다. 애써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등허리가 굽어지는 모습이 마치 무슨 용서라도 구하는 태도다. 노인네들은 공손하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고 싶다. 같은 말을 앉은 자리에서 되풀이 하거나 전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뜸을 들이며 쉼표 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 그, 왜, 저’, 하는 간투사로 언어공간을 메꾸는 사이에 상대방이 몸을 꼰다. 나이를 먹을수록 옛날을 회고하는 것이다. ‘그때가 좋았어’,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은 현재보다 과거가 좋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가난과 곤혹에 시달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웃기도 하고 ‘개고생’ 하던 군대생활을 떠올리고 무릎을 치며 공감한다. 그때는 ..

|詩| 큰 나무 노래

큰 하늘 사이로 저 검푸른 나뭇잎이 흔들리는지 저 뚜렷한 귀금속 청동의 거목 인자한 가지마다 당신의 소망이 우리 미미한 공백의 마음을 흔드는지 더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기골이 장대한 노인은 대저 우리의 실책이라는 것들이 이 엄청난 시공으로 매달리듯 날아가는 구름 떼의 아득한 신음 소리다 하셨다 나무를 휘감아 오르는 어느 더운 바람의 심중이 우리 속 죽음의 잔가지를 부검하는 목숨 깊은 칼질이다 순순히 솟아나는 푸르름의 떨림이다 그리고 그 기골이 장대한 노인은 전혀 요지부동으로 서 있었다 시작 노트: 88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된 해에 내가 미국에서 이런 시를 쓰다니, 하는 상념에 잠긴다. 한여름. 하늘을 가리다시피 신록이 울창한 나무잎새들이 흔들리던 그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엄청나게 큰 나무 둥치서..

발표된 詩 2023.03.04

눈을 감다, 그리고 뜨다 / 김종란

눈을 감다, 그리고 뜨다 김종란 늦은 저녁 시장 통에서 국수를 사, 초롱에 넣고 걸어오면 벌떼처럼 붐비는 발자국 소리 100년 전, 어느 날 이국 원시의 향 머무는 해당화 꽃잎 틈 지쳐 잠든 도시의 꿀벌 해당화 울타리 넘어오는 물소리, 웃음소리 이른 아침 *East River 위로 선박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흐르는 시간 같아 천천히 움직이는데 어느새 멀리 가 있어 * Manhattan 섬 동쪽에서 흐르면서 Long Island 해협과 연결되는 강 © 김종란 2021.08.15

바람의 기타(Guitar) / 김종란

바람의 기타(Guitar) 김종란 케이블카 위에 구름이 흐른다 케이블카 지붕 위에 기타를 안고 있다 바람은 기타를 울려 본다 내 서툰 연주 덮으려 연주를 한다 바람이 밀어다 올려 놓은 케이블카 지붕 위에 위태위태 흔들리며 선다 기타를 껴 앉는다 오후 4시와 5시 사이 허드슨 강이 무겁게 흐르고 엿가락 같이 끈적하고 기인 길도 터벅터벅 들어 온다 비 개인 숲속에서 자라나 뛰어든 폭포 이미 끝자락 푸르고 희게 웃으며 떨어진다 붐비는 도시 어두운 길에 화투짝처럼 떨어져 있다가 바람에 휘몰려 지붕위에 날아 오른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맨해튼 어느 지붕 위에서 서툴게 기타를 친다 젖은 신발 벗지 못한 채 지니고 온 때 묻은 배낭에 기대어 보다 못한 바람이 나의 기타를 울린다 여러 길을 걸어와 잠시 머물다 일어서야..

|詩| 하늘로 뜨는 유람선

기차가 힘차게 지나간 후 솜구름 눈부신 빛 언저리 잠든 듯 꿈 꾸는 듯 유람선 한 척 떠 있다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네 가벼운 물결만 촐싹거려요 나는 유람선, 느긋하게 전후좌우로 기우뚱거리고 있어 지금 맨해튼 하늘 빙판에서 몸매 뚜렷한 스케이트 선수 여럿 무자비한 속도로 질주한다 여기는 아테네 광장 여기에 왜 *tunic을 알몸에 걸친 당신과 나 아득한 숲의 기계체조를 관람하나 여기는 타임스 스퀘어 광장 기엄둥실 승천하는 **Ferris wheel 파도가 흰 이빨을 보이며 내 쪽으로 달려든다 *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입던 헐렁한 옷 ** 대회전 관람차 © 서 량 2021.09.1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746565 http://www.kore..

발표된 詩 2021.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