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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숯검정 강아지

갈색 머리칼이 쑥쑥 보랏빛 하늘로 뻗치는 여인아 콧등에 손가락을 슬쩍 대는 순간 아버지 본적지 초가집 마당 노적가리 밑 코끝 뭉툭하고 뱃살 폭신폭신한 그 옛날 숯검정 강아지만큼 갈색 체감온도가 쑥쑥 보랏빛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여인아 날개 접은 나비처럼 적막한 귀밑머리 아래로 땀을 뻘뻘 흘리는 내 여인아 시작 노트: 프랑스 화가 모네는 1890년과 이듬해 1년 사이에 노적가리 그림을 서른 몇개를 그렸다 한다. 내 나이 열 살 때 할머니가 홀로 사시던 경기도 농촌 초가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거기에 숯검정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워리였다. 매미 소리 요란한 집 마당 노적가리 밑에서 워리와 놀았는데 참 즐거웠다. 모네 그림에 나오는 노적가리와 비슷해 보이던 삼각형 모양의 짚풀더미였다. © 서 량 2005..

2023.03.01

몸을 입듯이 / 김종란

몸을 입듯이 김종란 몸을 입듯이 봄은 입고 한 발 걸음 한 발걸음 다가오듯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한 소리 가슴에 스며들듯 봄은 짓는다 푸른 공중으로 휘인 꽃가지 마음은 가볍게 피어나고 몸은 벚나무 둥치같이 무겁고 마르고 검다 한끼 밥을 짓듯 봄은 스스로 지어서 가파른 이랑에 엎드려 안간힘으로 움켜쥐고 있는 두 손을 향해 내민다 몸은 무겁고 마르고 검으나 봄을 입고 봄을 짓는다 © 김종란 201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