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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367. 개

2020년은 7월 16일이 초복이란다. 중복이 7월 26일, 말복은 8월 15일, 광복절날이다. 엎드릴 복(伏)은 ‘사람 인’과 ‘개 견’의 합성어다. 항복, 굴복, 할 때 쓰는 복자. 명실공히 복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람도 개도 다 엎어지는 날이라는 의미다. 1614년 광해군 시대에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芝峰流說)은 복날에 음기가 고개를 들어도 양기에 눌려서 엎드리게 된다고 가르친다. 1613년에 발간된 동의보감에 개고기는 양기가 충만하여 허약한 체질에 좋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의사가 시키는 대로 복날에 개를 먹는 우리들! 개는 말 대신 소리를 낸다. 컹컹 짖거나, 끙끙대거나, 으르렁거리면서 매우 본능적인 소리를 낸다. 한 사람이 하는 말이 무의미하고 역겨운 소리로만 느껴질 ..

|詩| 맨해튼 북부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너절한 거리를 걸어간다고 쳐 꽃집도 몇 군데 있는 개는 개대로 바보처럼 기뻐하고 개 주인은 인생을 정중하게 탐색하는 태도를 포기한지 한참 됐다거나 아니면 찌릿한 마음의 평온 같은 거나 죽음에 접근하는 서늘한 평화를 좋아하는 법을 목하 체득 중이라고 쳐 개 주인이 아니야 꼭 그런 상황이 아니면 어때요 설정이야 아무렴 어때요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응 그래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한여름에도 늦가을인 듯 바람이 부는 거리를 개 다리 넷과 사람 다리 둘 도합 다리 여섯 개가 바쁘게 튼튼한 드럼 비트에 박자 맞춰서 쿵처적! 쿵척! 신나게 빠르게 걸어간다고 쳐 수정벽으로 쫘악 둘러 싸인 용궁 속에 앉아 적적한 바다 밑을..

2020.07.05

|詩| 가상현실

내 밑바닥에 누워있는 당신의 진실을 보았다 한편의 시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눈을 감는 순간 매서운 채찍질과 빠르고 음산한 배경음악에 박자 맞추어 온몸으로 눈보라를 뚫고 질주하는 저 북극의 개, 울부짖는 늑대 떼보다 몇배 더 성급한 개떼, 내가 개 여러 마리로 길길이 둔갑하여 썰매를 끌고가는 흑백의 화면을 보았다 한밤중에 한껏 지구를 가로지르고 싶은 내 주인의 희열을 위하여 © 서 량 2017.03.30 --- 2020.06.07

2020.06.08

|컬럼| 183. 고양이와 개와 쥐

It rained cats and dogs last night! 정말 그랬다. 요란하게 싸우는 고양이와 개처럼 지난 밤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승용차 여섯 대가 이리저리 부딪혀서 사고가 난 고가도로를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다. 더러는 샛길을 이용하러 했지만 교통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출근이 이렇게 늦어진다는 건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경에 빠졌다는 뜻으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가 있다. 사람이 '악마와 짙은 청색의 바다'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섬뜩한 표현이다. 이런 걸 한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 하지만 나는 귀에 얼른 쏙 들어오는 '빼도 박도 못한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더 좋다. 그리고 그럴 때는 그냥 '쥐 죽은 듯' 가만이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컬럼| 39. 개가 있는 풍경

‘저 먹기는 싫고 개 주기도 아깝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자신은 큰 관심도 없는 일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눈 뜨고 못 보는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낸 말이다. 영어에도 그런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이솝 우화 중에서 한 개가 저 자신이 여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약이 올라 여물통 속에 들어가 난동을 부림으로써 다른 동물들이 여물을 못 먹게 했다는 이야기. ‘a dog in the manger (여물통 속의 개)’라는 관용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는데 소위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린다’는 놀부심사다. 자고로 개는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인간의 고약한 심성을 비유하는데 있어서 좋은 샘플이 된다. 미우나 고우나 개는 우리의 공격성을 대변한다. ‘개처럼 일해서 정승처럼 살아라’ 할 때의 개는 아주 원기 왕성한 에너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