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페이스를 드나드는 지구촌 사람들이 욕을 하는 성향에 대한 통계를 읽는다. 뉴욕 포스트는 미국내에서 가장 욕을 자주하는 사람들이 뉴요커가 아니라며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인다. 1등은커녕 17등으로 밀린 뉴욕 시티. 영화에서 자주 보는, 말끝마다 욕을 쏟아대는 맨해튼 거리의 풍경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라는 판명이다.
2024년 8월에 1000명의 온라인 트위터 메시지를 대상으로 한 집계를 따르면 미국에서 욕을 제일 잘하는 도시는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라는 것. 볼티모어는 선원들이 많이 사는 항구다. 뱃사람들은 워낙 바다에 대한 공포심에서 욕을 잘한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네이버 사전은 욕(辱)이라는 한자어를 이렇게 풀이한다. ➀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남을 저주하는 말. ➁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 ➂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 ➃’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영어의 욕은 ➀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➁, ➂, ➃는 별로 없다.
辱은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하여 뜻이 합성된 낱말, 즉 회의문자(會意文字). 辱자는 별 辰자와 마디 寸자가 합쳐진 모양새. 갑골문자에 ‘농기구’를 손에 든 모습이라 풀이한다. 辱은 농기구를 쓰면서 흙 묻은 손이 더러워진다는 뜻에서 생겨난 말이란다. ➃의 주제는 단연 ‘더러움’이다.
병동환자 중에서 욕을 제일 자주 하는 스티브는 모욕과 저주에 능숙하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을 뿐더러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본국에 돌아가라 명한다.
병동직원들도 인간인지라 덩달아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어하는 눈치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욕설은 환자들의 특권이기도 한 것을. 얼떨결에 환자와 맞섰다가 환자에게 내부적인 고발(?)을 당한 후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적 차원에 국한된 욕이 더 호소력이 강하다. 가장 강력한 욕은 성적(性的)인 발언이다. 치부(恥部) 디파트먼트를 타겟으로 삼는 치사한 심보. 생식기를 떠나 소화기에 말단부분에도 초점을 맞춘다. 미국인들에게 ‘shit’는 욕도 아니다. 직장 동료가, “Ah, shit!” 하면 “아이구, 참!”하는 가벼운 좌절감의 표시로 나는 받아드린다. 물론 격렬하게 욕을 할 때도 이 말이 어김없이 쓰이기도 하지만.
욕쟁이 스티브는 남에게 모욕과 저주의 세례를 실컷 퍼부은 후 표정이 개운하다. 슬퍼서 심하게 울고 난 사람의 평온함이 엿보인다. 푸짐한 배설작용 후에 찾아오는 푸근한 마인드셋. 오물을 듬뿍 뒤집어 쓴 직원은 마음이 편치 않다.
2023년 6월 플로리다의 오를란도 메디컬 뉴스 기사를 읽는다.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주장한 욕의 혜택(benefit)에 대한 논문이다. 욕을 하는 사람은 욕을 안 하는 사람보다 정직하다는 점. 당신이 쉽사리 동의하지 않겠지만, 욕이 심리적 고통을 완화시킨다는 점. 그리고, 딱딱한 이론에만 급급하는 좌뇌(左腦) 기능에 비하여 욕을 할 때는 창조력을 고무시키는 우뇌(右腦)가 자극을 받는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어릴 적 한밤중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를 훔친 후 부엌바닥에 똥을 푸짐하게 누고 갔던 일이 있었다. 잡히면 큰일난다는 공포심에서 말 대신 몸으로 욕을 했던 것이다. 무서워서 욕을 하는 정신상태.
역병과 불운에 대항하려고 부모가 옛날에 아들을 개똥이라고 불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자식을 개똥이라고 부를 때마다 부모들은 안도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개똥이의 어린 시절이 애꿎이 욕을 본 것이다.
ⓒ 서 량 2024.09.01
뉴욕 중앙일보 2024년 9월 4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9/03/society/opinion/202409031741276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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