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어둡고 괴로운 과거에 매달리는가. 당신은 숱한 과거의 기억 중 어찌 그리도 아프고 슬픈 과거에 집착하는가. 따스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활짝 웃으며 ‘Happy Birthday to You~♪’ 하며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입을 모아 노래하던 즐거운 메모리 등등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케네디 공항에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하는 일상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어느 날 비행기가 추락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서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는 뉴스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쏠리지요. 나는 허전한 생일파티 등등보다 잘못하면 나의 안전이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에 조마조마해집니다.
자기보존본능은 모든 생물체의 생존을 위한 기본여건이다. 까마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 원시인들이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초긴장 상태로 살았던 것이나 현시대의 우리들이 기계문명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고 비행기 추락사고 따위 소식에 바짝 긴장하는 것도 다 본능적인 위기감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둡거나 괴롭거나 아프고 슬픈 과거지사에 매달린다. 그런 어두운 기억을 한껏 애정한다.
어릴 적 부모에게서 학대를 받으며 받은 사람이 어른이 돼서도 학대를 주고 받는 이성관계를 거듭한다. 급기야 나라는 개인적 차원을 떠나서 전 인류가 집단적으로 나쁜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 History repeats itself. (칼 마르크스, 독일 공산주의자가 했던 말)
개인적, 집단적 역사 뿐만 아니다. 우주의 운행, 태양계의 혹성들, 지구의 공전, 약속처럼 찾아오는 4계절, 우리의 말버릇, 정신상태, 성격과 대인관계 같은 모든 것이 어김없이 되풀이 된다.
어두운 역사의 반복현상에 반하여 진화론은 어떤가. 모든 것을 신의 섭리에 맡기는 사고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개인이 획득한 지식, 기술, 타인을 향한 호불호(好不好) 같은 것들이 대물림을 하면서까지 진화가 지속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
우리의 머나 먼 조상 원숭이들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꼬리 길이가 조금씩 짧아졌다는 이론이다. 이제는 아주 없어진 채 그 흔적만 우리의 점잖은 엉치뼈에 남아있다는 진화론적 역사를 상기한다. 모든 생명체의 진화과정도 반복의 소산인 것을.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는 일에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매일매일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조금씩 조금씩 손놀림이 익숙해지며 미세근육의 진화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속담은 ‘Practice makes perfect’, 훈련이 완벽을 이룬다, 자꾸 연습하다 보면 아주 잘하게 된다, 하지 않았는가.
공산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에 ‘톰 소여의 모험’으로 미국문화를 경축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명언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미숙한 발언을 비판한다. – 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often rhymes. -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가끔씩 운율을 맞춘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못해 아픔에 시달리는 횟수를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과거에서 벗어나는 진화과정을 밟는다. 꾸준히, 아주 꾸준하게, 종종 상서로운 돌연변이현상이 일어나는 우리의 삶은 주제와 변주의 흥미로운 연속이다. 주제 멜로디와 화음진행이 숨어있는 변주곡이 잘 연주되는 인생이다. 우리의 삶은 소나타 형식의 감명적인 음악이다.
ⓒ 서 량 2024.08.18
뉴욕 중앙일보 2024년 8월 2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8/20/society/opinion/202408201731007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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