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간에 말다툼이 일어난다. 금세 주먹다짐이 터진다. 정치가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난다. 그들의 말다툼은 주먹다짐 대신 막말잔치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룹테러피 세션에 나는 환자들의 인내심 부족과 미숙한 언변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토론을 멀리하고 강연 형식을 취하려 애를 쓴다. 마치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사라도 된듯한 기분이다.
남의 말을 가로막는 습관이 있는 환자가 눈을 크게 뜨고 앉아있다. 그는 내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재빨리 끼어들어 반대의사를 표명하거나 주제와 관계없는 말을 꺼낸다. 다른 환자가 “Hey, Mr. Buttinksi!” 하며 그를 향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참 오랜만에 듣는 속어, ‘Buttinski’다. ‘butt in’에 도스토예프스키 또는 차이코프스키 같은 북유럽식 이름의 ‘스키’가 붙어서 만들어진 합성어. ‘butt in’은 1900년경부터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슬랭으로서 ‘염치없이 끼어들다’라는 뜻. 그래서 ‘buttinski’는 그런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슬랭이다. 영한사전은 ‘참견하는 사람’이라고 싱겁게 풀이한다. 어떤가. 어원학(語源學)이 재미있지 않은가. 별로라고? 그래도 내 말을 막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기 바란다.
우리는 왜 남의 말을 막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대충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온다. ➀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➁남의 말을 듣기가 싫어서 ➂다른 사람의 관심을 자기에게 쏠리게 하기 위하여 (시선강탈 또는 관심강탈) ➃자기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우월감 때문에 ➄치열한 경쟁심에서
사람 마음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버딘스키’들은 도대체 왜 남의 발언권을 강탈하는가. 왜 생도가 선생님의 말을 가로막고 선생님을 가르치려 하는가 말이다. 한 환자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선생님이 떠드는 게 싫어서요. 선생님이 미워서요.
기본설정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Something is wrong in our default setting!” - 오냐, 갈데까지 가보자! – 이건 학생이 교실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내 말을 잘 듣거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지식과 깨달음은 스승에서 제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 도리다. 뭐,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스승을 제자들이 합심하여 ‘탄핵’시켜야겠다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너희들 몇몇이 노래를 중단시키겠다는 것. 그리고 음치에 가까운 버딘스키의 노래를 들으라는 말이지. 목사의 언변이나 태도가 탐탁치 않아서 설교 도중에 재빨리 끼어들어 목사에게 설교를 하겠다는 거지, 시방.
지금부터는 자유토론 시간이다, 라고 선포하자 한 환자가 말한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 경쟁하는 스포츠와 같아야 합니다.” – 내가 응답한다. “스포츠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예컨대 권투선수는 절대로 링을 떠나면 안된다. 상대를 발로 차도 안된다.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주먹다짐을 결코 복싱경기에 비교할 수 없다.”
‘butt in’ 할 때의 ‘butt’은 라틴어의 ‘buttock, 엉덩이’의 줄임말이다. ‘butt’에는 ‘담배꽁초’라는 뜻이면서 ‘뭉툭한 부분’ 또는 ‘머리부분’이라는 의미도 있지. 즉, 남의 언어공간에 머리를 들이미는 행동이 ‘butt in’이다.
이 어원학에 의하면 ‘buttinski’가 머리를 들이미는 작자인지, 엉덩이를 들이미는 작자인지 그놈이 그놈이라는 혼동이 생긴다. 어찌타 서구인들은 ‘머리=엉덩이’라는 생각으로 사는가. ‘스승=제자’라는 거지. 정말?
© 서 량 2024.08.04
뉴욕 중앙일보 2024년 8월 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8/06/society/opinion/202408061730366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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