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수 있는 단단한 자리와 지렛대를 주면 나는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 Give me a firm place to stand and a lever and I can move the Earth.” 라고 말한 아르키메데스를 생각한다.
‘내게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주면 나는 성격장애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병동직원에게 나는 속삭인다. 건방지거나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단,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나의 시간은 둘 다 충분히 길어야 한다는 점이 이슈다.
부모님 3년상이 우리의 오랜 유교식 전통이지만 현대에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 기간을 약정해 놓은 사회적 통념에는 정신과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의 심리적 아픔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아동심리 발육의 타임라인은 많이 다르지만 어른들이 어떤 큰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는 기간이 평균 3년 정도라는 통설이다. 시집살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하는 속언도 있지 않은가.
3년이라는 모범답안이 정신치료에도 적용된다. 정신과의사 또한 3년동안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는 수가 많다. 한 사람의 손상과 결핍을 파악하는 충분한 이해력이 생기는 기간도, 환자가 완전 타인인 상담자에게 익숙해지는 시기도 그 정도 걸린다는 사연이다. 통계에 의하면 20세기 초반 프로이트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람찬 정신분석을 받는 기간도 평균 3년 내지 5년이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우울증, 성격장애 같은 고통과 갈등의 완화, 자기 성찰, 대인관계의 개선, 어렵거나 힘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정신적 자세 등등을 손꼽는다.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겸손하고 세속적인 소망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을 바꾸기 위하여 우선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각성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구라도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물리적 힘이 지렛대와 버팀목을 필요로 한다면, 한 사람의 됨됨이를 변화시키는 기본설정은 충분한 시간과 조용한 환경이다. 조용한 환경은 비교적 평온한 심리상태를 동반한다. 차분한 마음을 독려해주는 기법을 터득한 슬기로운 정신상담사를 만난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병동환자들에게 정신분석을 시술하지 못하는 여건이라는 말이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들은 대부분 그럴 준비가 돼있지 않다. 옛날에 동료 수련의가 함부로 정신분석학적 발언을 남발했다가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지.
환자가 뇌까린다. “I’m doing my time here. -- 나는 여기서 형(刑)을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 부드러운 언성으로 응수한다. “여기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사람이 약간 달라져서 퇴원하는 겁니다.”
나는 연이어 말한다. “좋은 기타 연주자가 되고 싶다 했잖아요. 자주자주(time after time) 악기를 연습해야 되듯 마음 씀씀이를 연거푸 연습을 해야 좋은 사람이 됩니다. 거듭거듭해서요.(Time and time again). 이 의미심장한 대화에 시간(time)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들어간다.
속이 더부룩할 때 활명수 한 병으로 뱃속이 금세 개운해 진다. 육체적 증상은 앉은 자리에서 눈 녹듯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람 성격의 성장과정은 단숨에 이루지지 않는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 서 량 2024.07.07
뉴욕 중앙일보 2024년 7월 10일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7/09/society/opinion/20240709180536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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