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에드워드 호퍼(1882~1967)
뉴욕 근교 소도시 나이액(Nyack)에 있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생가(生家) 박물관을 찾아간다. 나는 호퍼의 그림을 참 좋아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자’라 불리는 그는 생전에 자기가 ‘인상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45일이 지난 1942년 1월 21에 완성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 Nighthawks’를 음미한다. 일본의 본토 침략에 대비해서 공습훈련이 있던 때다. 썰렁한 다이너에 앉아있는 남녀의 표정이 보는 사람의 상상을 자극한다. 당신도 아마 이 그림을 몇 번 무심코 보았을지 모르지. 구글 검색을 하면 금방 화면에 뜬다.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에 나를 투입한다. 넓은 땅에서 다져온 개척정신의 어려움, 당시 미국인들이 체험하던 전쟁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개인주의와 자유경쟁의식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느낀다.
‘밤샘하는 사람들’보다 13년 전, 1929년 호퍼의 그림 ‘Chop Suey’를 감상한다. 한국에서는 ‘중국음식점’으로 알려졌다. 두 그림 다 식당이 배경. 야간식당에는 남자 셋, 여자 한 명, 그리고 햇살이 대각선으로 펑펑 쏟아지는 중국식당에는 반대로 여자 셋, 남자 하나가 앉아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chop suey’는 1884년에 생겨난 영어다. 웹스터 사전은 이 말의 발생처를 중국 광동어(廣東語)로 삼는다. 중국 발음 ‘잡수이’가 ‘찹수이’로 변한 것. ‘잡(雜)’은 잡동사니를, ‘수이’는 쪼가리를 뜻한다. 우리 사전은 찹수이를 ‘다진 고기와 야채를 볶아 밥과 함께 내는 중국 요리’라 풀이하는데 인도에서는 비슷한 요리를 ‘잡차이’라 부른다. 우리말 발음과 거의 똑같다.
호퍼 생가 박물관의 나이 든 안내자는 일부 미술해설자들이 지적하는 호퍼가 보여주는 외로움과 대화의 단절에 대하여 언급한다. 호퍼는 결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극구 주장한다. 나는 그녀에게 외로우면 안 되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외로우면 큰일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 호퍼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꾹꾹 참으며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갈등을 승화시켰다는 보고를 읽는다.
그 좁은 공간에 호퍼의 작품이 몇 점 되지 않지만 그가 마주하던 허드슨 강을 같은 방, 같은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물결친다. 나중에 온라인을 통해서 그의 그림을 다시 곰곰이 감상한다. ‘찹수이’ 여주인공의 짙은 립스틱에 대해서 논평하는 글을 숙독한다.
하릴없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아니더라도 그녀는 스스로 삶의 의욕을 북돋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그림이 2018년 11월에 크리스티 옥션에서 물경 92백만 달러에 매각된 이유를 알겠다.
‘밤샘하는 사람들’은 호퍼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미국의 가부장적 사나움과 어두움을 대변하기 때문일지. 호퍼의 ‘사실주의’를 굳게 믿는 사람들이 그림에 나오는 다이너를 찾아내려고 그가 살던 맨해튼 남단 그린위치 빌리지 근처 다이너를 이 잡듯이 뒤져봐도 헛수고였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한 미술평론가는 호퍼의 그림이 ‘관찰과 상상과 기억의 컴비네이션’이라 논술한다. 관찰도 상상도 메모리도 결코 100% 객관적일 수 없으려니. 예술에 있어서 사실주의(Realism)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현실적 상상과 현실을 잡채처럼 섞는 비결을 체득한 호퍼! 그의 사실적인 묘사에 비장된 코드를 감지한다.
© 서 량 2022.11.27
뉴욕 중앙일보 2022년 11월 30일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2/11/29/society/opinion/202211292120521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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