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01. 따스한 가을

서 량 2022. 11. 5. 19:22

 

티. 이. 흄(T. E. Hulme: 1883~1917)의 짧은 시 “가을”(1908) 전문을 소개한다.

 

약간 차가운 가을 밤에/ 시골 길을 걸었네/ 그리고 얼굴이 벌건 농사꾼 같은/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 몸을 구부리는 걸 보았네/ 나는 멈춰 서서 말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네/ 그리고 주변에는 동네 아이들처럼 얼굴이 하얀/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네

 

시에 있어서 흄은 낭만과 고전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오는 이미지즘(imagism)을 이룩한 창시자로 손꼽힌다. 말 수와 수식어를 최소한으로 줄여 말하는 이미지즘 기법은 시 뿐만 아니라 껍데기를 벗겨 놓은 언어의 누드(nude) 데상 같다.

 

이미지즘은 로코코 스타일의 은유와 상징에 익숙한 예술 비평가들에게는 데면데면하게 느껴지는 시작법이다. 햇볕에 타서 붉어진 농사꾼의 얼굴처럼 보이는 달과 그 주위를 감싸 도는 동네 아이들의 하얀 얼굴, 어른과 아이, 달과 별의 관계가 왠지 참 따스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옛날 내 시를 들척이다가 읽기에 데걱거리는 “따스한 가을”(2004)을 훑어본다. 좀 너저분한 전문이 이렇다.

 

바람 찬 오후에/ 간들간들 떨어지는 잎새에서/ 비릿한 향기가 나는구나 그 냄새는/ 중세기 시절 몸집이 우람한 기사가 사랑하던/ 송충이 같은 속눈썹에/ 코가 알맞게 큰 귀부인 체취라고/ 우기면 고만이다, 나는/ 바람결에 바스락대기만 하고/ 전혀 딴짓을 못하는 빨강 노랑 잎새들은/ 자기들이 어떤 향기를  풍기건 말건/ 도무지 개의치 않는다/ 하늘 빛 짙은 어느 오후에/ 나 몰라라 하며 밑으로 밑으로만 떨어지면 고만이다, 곧장

 

시대와 환경을 전혀 다르게 태어난 흄과 내가 우연히도 ‘약간 차가운 가을 밤’, ‘바람 찬 오후에’ 하며 거의 같은 억양으로 피부에 와 닿는 가을 공기의 촉감에 첫 운을 던졌다는 일이 신기하다.

 

흄은 이미지즘의 속성에 걸맞게 시각적인 묘사로 독자의 감각을 유인한다. 반면에 나는 후각을 들먹이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나 또한 몸집, 송충이 같은, 코가 알맞게 큰, 빨강, 노랑 등등 시각에 신경을 쏟으면서  ‘바람결에 바스락’대는 청각효과마저 삽입한다. 흄에 비하여 나는 좀 너절하고 반복적이라서 간결성에서 점수가 많이 떨어지지만, 시대가 다르고 사람 성격이 다른 걸 어찌 하나.

 

가을은 다채로운 색감(色感)이 아우러지는 시각의 계절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계(色界)가 따로 없다니까. 온 천지가 삼원색(三原色)으로 뒤범벅이 된다. 새빨간 단풍, 꾀꼬리 단풍이라는 별명을 가진 단무지처럼 샛노란 잎새들, 그리고 저 물색 모르고 파랗기만 한 인디고 블루, 쪽빛 하늘!  

 

가을이 여름보다 더 뜨겁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했다. 기실 한자어 가을 추(秋)도 벼 화(禾)에 불 화(火)가 합쳐져서 농익어 타오르는 한가을 황금 논밭을 연상시키는 시적(詩的) 표현이다. 가을은 뜨거운 계절이다. 갑골문자에 벼 禾 옆에, 불 火 대신 메뚜기 그림이 있었다지만 솔직히 나는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순 우리말 가을은 더욱더 시적이다. 가을의 어원은 곡식이나 과일을 ‘끊어내다’는 뜻의 고어 ‘갓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시옷 발음이 이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남부 지방에서는 ‘추수하다’의 방언으로 ‘가실하다’는 말을 쓰고 있다 한다. 가을에 곡식과 과일을 끊어내지 않는다는 것은 갓난아기의 탯줄을 끊지 않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없다.

 

가을은 정말 따스한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은 계절의 클라이맥스다.

 

© 서 량 2021.11.01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11월 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1/11/02/society/opinion/20211102171202552.html

 

[잠망경] 따스한 가을

 

news.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