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67. 개

서 량 2020. 7. 13. 10:49

 

2020년은 7월 16일이 초복이란다. 중복이 7월 26일, 말복은 8월 15일, 광복절날이다.

 

엎드릴 복(伏)은 ‘사람 인’과 ‘개 견’의 합성어다. 항복, 굴복, 할 때 쓰는 복자. 명실공히 복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람도 개도 다 엎어지는 날이라는 의미다.

 

1614년 광해군 시대에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芝峰流說)은 복날에 음기가 고개를 들어도 양기에 눌려서 엎드리게 된다고 가르친다. 1613년에 발간된 동의보감에 개고기는 양기가 충만하여 허약한 체질에 좋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의사가 시키는 대로 복날에 개를 먹는 우리들!

 

개는 말 대신 소리를 낸다. 컹컹 짖거나, 끙끙대거나, 으르렁거리면서 매우 본능적인 소리를 낸다. 한 사람이 하는 말이 무의미하고 역겨운 소리로만 느껴질 때 ‘개소리’라 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모욕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한자어를 써서 견성(犬聲)이라 하면 좀 세련되게 들리지 모르지만.

 

견성(犬星, 개별? Sirius)이 밤하늘에서 득세하는 기간을 양력에서 ‘dog days’라 한다. 문자 그대로 복날이라는 뜻. ‘Sirius’를 쉽게 ‘dog star’, 우리말로 ‘개자리’라 부르지. 그 7개의 별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이름이 ‘늑대별’이다. 옛날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개자리 별 기운이 솟으면 가뭄이나 폭우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허약해지고, 광견병이 생기거나 액운이 닥친다고 믿었다. 우리 조상은 이열치열의 원칙으로 복날에 개를 먹었지만 고대 희랍인들은 각종 약초를 먹으면서 더위를 견뎠다는 기록이 그로테스크한 대조를 이룬다.

 

개의 생존과 운명은 인간이 도맡는다. 개는 그래서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납작 엎드린다. 의사표시를 온몸으로 한다. 시작(詩作)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던 김수영이 생각난다. 숱한 시인들이 그 말을 귀감으로 삼았고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개처럼 순수하고 절실한 생명력에 힘을 입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개를 배신하는 주인은 무수히 많지만 주인을 배신하는 개에 대하여 나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한다. 사냥꾼이 토끼를 잡고 난 후 사냥을 도와준 개를 삶아 먹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개보다 못한 인간들!

 

개가 접두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표준국어사전에 세 가지 의미가 나온다. ➀질이 떨어지고 수준이 미흡하다 (개떡, 개살구)  ➁헛된, 부질없는 (개꿈, 개죽음) ➂정도가 심한 (개망신, 개잡놈) 에헴, 개수작, 개나발 같은 속어는 셋 다에 해당한다.

 

또 있다. 근래에 유행하는 개좋다, 개웃기다, 개맛있다 같은 속어들. ➂의 부정적 분위기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지극히 양성적인 의미로 변한 표현. 마치도 이수광이 설파한 기(氣)의 대결에서 양기가 음기를 단단히 눌렀다는 뜻이 된다. 광명이 암흑을 활짝 제키듯.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마크 앤서니는 시저가 암살을 당하자 앞으로 닥칠 내전의 공포에 질려서 이렇게 독백한다. “때려 부숴라! 그리고 전쟁의 개들을 풀어 놓아라!” – “Cry ‘havoc!’ And let slip the dogs of war!” (본인 譯)

 

나는 개를 좋아한다. 혀 빼물고 덤벼드는 충직한 공격성이 마음에 든다. 주인의 안전을 위하여 전쟁에 뛰어드는 개!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개들의 전쟁을 본다. 밤하늘 늑대별이 유난히 번득이는 복날에 즈음하여 마크 앤서니의 독백을 뇌까린다.  

 

© 서 량 2020.07.12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7월 15일 서량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473723

 

[잠망경] 개

2020년은 7월 16일이 초복이란다. 중복이 7월 26일, 말복은 8월 15일, 광복절날이다. 엎드릴 복(伏)은 ‘사람 인’과 ‘개 견’의 합성어다. 항복, 굴복할 때 쓰는 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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