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97. 앙갚음

서 량 2017. 10. 16. 11:52

적폐청산(積弊淸算)이라는 정치용어를 마주한다. 2017 10월 인터넷 신문에서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혼동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보복을 다른 말로 복수 또는 앙갚음이라 한다. 앙심(怏心)이라 할 때 쓰는 원망할 ''이라는 한자어와 순수한 우리말 '갚음'이 합쳐진 복합어다. 원망심도 돈처럼 갚아야 할 빚이다.

 

적대감정은 선과 악의 대립에서 출발한다. 선악의 대결은 모든 종교가 제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좋은 본보기다. 그것은 사람 마음을 파고드는 좋고 싫음이면서 동질성과 이질성에 대한 본능적 요소를 양념으로 받아들인다.  

 

당신과 내 심층심리 밑바닥에 숨어있는 마녀사냥에 대한 의식구조를 점검한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중엽부터 17세기 말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의 집단광증이었다. 잔다르크가 말미를 장식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끝나고 계몽주의 사상의 새벽이 올 때까지 서구인들을 강타한 짙은 어둠이었다.

 

잔다르크는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12개 혐의로 화형을 당한다. 죄명 중에서 마술을 사용했다는 이단(異端)이 가장 큰 항목이었다.     

 

한 여자가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에서 시작하여 그녀가 마녀라는 증거가 성립될 때까지 끈질긴 심문이 계속되는 것이 마녀재판의 특징이다. 심문 방법 중에는 여자를 물에 빠뜨리는 수순이 있었다. 여자가 물장구라도 쳐서 금방 익사하지 않으면 침례의식(baptism)을 거부하는 악마체질로 간주하여 물에서 꺼내 목을 매달거나 화형에 처했다.

 

처음에 어떤 여자들이 마녀라는 의심을 받았을까. 어딘지 좀 이상해 보이면서 공연히 싫은 느낌을 풍기는 여자였을까. 누군가가 헛소문을 퍼뜨리며 여론몰이를 하지는 않았는지. '언론play' 빈도와 강도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집단광증의 쓰나미에 휩쓸리지는 않았던가. 사람들이 겉으로는 경건하게 선과 악을 분별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내심 말도 안 되는 미움과 사랑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는지.

 

비가 그친 후 활짝 개인 하늘 아래 현란하게 반짝이는 지성의 거미줄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당신과 내 심층심리 밑바닥에 숨어있는 동물근성을 살핀다. 동물보다 더 동물적이고 잔인하게 타인을 향하여 꿈틀거리는 반감(反感)의 모습을 본다.   

 

근래 한국 티비에서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판을 치는 것이 크게 놀랍지 않다. 무차별한 대결의식으로 악을 쓰면서 상대의 간을 박박 긁어대는 악역에 넋을 빼앗기는 순간 마치 내가 마녀사냥의 구경꾼이 아닌가 싶어 당혹스럽다. 보복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돌아온 복단지," "도둑놈 도둑님," 그리고 "부암동 복수자들"의 등장인물들 모두가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적폐'의 영어번역을 찾아보았다. 'accumulated evil (쌓인 악)'은 싱겁게 들리는 반면 'deep-rooted evil (뿌리 깊은 악)'이라는 음산한 번역이 눈길을 끈다.

 

어원학자 드반(de Vaan)은 산스크리트어(梵語) '보복하다, 벌주다'라는 뜻의 'mei-'와 현대영어 'municipal()'과 어원이 같다고 가르친다. 당신이 조석으로 찾아가는 'municipal parking lot (시영 주차장)'의 바로 그 ''가 우리를 벌주고 복수하는 무서운 존재였다는 말이다.

 

'You can't fight city hall'이라는 슬랭이 있다. 시정부(市政府)와 싸우면 진다는 뜻.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존체제와 싸우면 패배한다는 진리가 성립되고 기존권력의 미움을 사면 신상에 해롭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도 잔다르크도 그래서 소리 없이 죽었던 것이다. 진종일 가을바람 사이로 비가 내리는 2017 10월 중순에 그들이 그립다.

 

© 서 량 2017.10.15

-- 뉴욕중앙일보 2017년 10월 1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