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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 최진훈의 두 번째 수필집 "산을 향해 눈을 드니" 서평

서 량 2017. 1. 31. 09:31


겸허한 자세로 종교음악을 해설하는,

최진훈 두 번째 수필집 <산을 향해 눈을 드니> 출간

 

최진훈은 좀 유별난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절친한 관계다.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를 치지 않는 것도 똑같지만, 초등학교 때 미술반을 같이했고, 둘 다 서울의대 오케스트라 멤버였고, 1980년도 중반에 여기 뉴욕에서 의사악단을 한답시고 키보드와 색소폰을 들고 길길이 날뛴 적도 있다.  

 

그는 일찌감치 교회음악에 뛰어들어 성가대 지휘를 했다. 기어코 줄리아드 스쿨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하는 저지레를 하더니만 1987년 이래로 뉴욕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토요일 저녁 모임 같은 데서도 다음날 아침에 성가대 연습이 있다면서 남들보다 훨씬 먼저 자리를 뜬다.

 

최진훈은 2004년에 '벽을 향한 소리'라는 수필집을 냈다. 2017년 초에 뉴욕 유니온 출판사에서 나온 두 번째 수필집 제목은 '산을 향해 눈을 드니'.  그의 기본자세는 무엇을 '()'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관심이 벽에서 산으로 돌려진 것이 의미심장하다. 벽이 맞받아치는 소리의 반향에 대한 섬세함을 접고 이제 그는 대담한 시선으로 먼 산을 바라본다. 이 타이틀은 캔서스 출신 'Allen Pote'가 작곡한 성가(聖歌), 성경 시편 121편의 첫 구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드니"에서 따온 것이다. (73)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경건하다.

 

나는 지도자의 권위보다 지휘자의 열정을 더 높이 평가한다. 지휘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퍼포먼스를 하지만 지도자는 장기집권을 노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곡의 해석방법을 소절소절 친절하게 설명한다. 성직자가 신을 칭송한 성경의 해석자라면 지휘자는 작곡자가 남긴 악보의 해설자다. 나 같은 시정잡배의 정신상태로 보면 둘 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를 힘차게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가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레고리안 챈트의 음산한 음률이 그림자처럼 하얀 성당의 벽을 스쳐가던 대학시절을 상기하면서 최진훈의 역사적 고찰을 읽는다. (178) 그렇다. 이 책에서 그는 결코 시건방진 의사 티를 내지 않으면서 음악과 종교를 의기투합시켜 당신과 나의 신비한 영계(靈界)에 접근한다. 겸허한 굴신(屈身)의 자세로.


© 서 량 2016.01.30

-- 뉴욕 중앙일보 2017년 1월 17일 오피니언란의 <서평>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