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장대비**

서 량 2011. 7. 6. 20:00
 

종이우산에서 이상한 기름 냄새가 났다 콩기름 같기도 했지만 새로 나온 신문 냄새라고 우겨도 괜찮은 냄새였다 종이우산을 쓰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동안 아무에게도 소식을 전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빗물에서는 쇠 냄새가 났는데 사람이 너무 냄새 위주로 산다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종이우산이 간신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좀 굵다 싶은 대나무를 질서 있게 쪼개 놓은 우산살 덕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비바람이 혹독하게 몰아칠 때 종이우산은 완전히 미쳐서 양팔을 하늘을 향하여 V자 모양으로 쫙 벌리고 슬픔도 원망도 아닌 감정으로 볼썽사납게 울었다 그때 종이우산은 선거에 당선이 확정된 입후보자보다 더 기세가 등등했다 즐거웠어요 하며 당신이 뒤돌아 서서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을 배경으로 장대비가 따갑게 쏟아졌다

 

 

© 서 량 20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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