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흔적 지우기 외 1편 / 한혜영

서 량 2010. 1. 2. 23:38

 

흔적 지우기 외 1편

 

             한혜영

 

동짓날 밤하늘만큼이나 캄캄했던

팥죽소래기 흔들던 기억이 문득 나네요.

새알심 빼먹은 흔적 지우려고 

어둠에 웅크리고 앉아 팥죽소래기

가만가만 흔들어댔던 어린 시절이. 


사랑이 들었다 나간 마음도 그럴 테지요.

그 흔적 없애보려고

마음의 가장자리를 잡고 가만가만

흔들어대는 사람

이 밤에도 여럿 있을 것입니다.


살아서 맞는 이별이 이럴진대

생목숨 쏙쏙 뽑아갔던 흔적이야

오죽이나 또렷하고 기가 막힐 것인지요.

흙 퍼 올린 자리가 우물이 되거나

연못이 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조약돌 뽑혀나간 해변으로

파도가 부지런히 다녀가는 이유

바람조차 예사로

불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아요.

어느 굵은 마디를 가진 손가락이

지구의 가장자리를 잡고

가만가만 흔들어대는 것이겠지요.


간밤에 빠져나간

목숨들의 흔적들을 지우려고

오늘도 

오늘 모가치의 바람이 어김없이 불고 있네요.

 


      올랜도 간다

                    

대구탕, 순두부 한 그릇 만나러 고향집 간다

시간 반도 넘게 운전을 해서 올랜도 간다


고맙다고, 대구탕 순두부가 고맙다고

같이 밥 먹어줘서 고맙다고


벌건 얼굴로 꾸벅꾸벅 맞절하러 올랜도 간다

이것이 生이지 펄펄 끓는

뚝배기에 숟가락 담가 보려고 올랜도 간다


비라도 내리는 날은

좀 더 멀리까지 나가도 보고 싶지만

그것이 눈발이라면

영영 달아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플로리다서 눈발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 때문에

귀가 길 아직도 지우지 못하는


우리는 생리를 치르듯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올랜도 갔다가 집으로 온다

 

<시와 시>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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