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게시, 담론

토끼들 / 황재광

서 량 2009. 12. 18. 03:44

십수년 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양목사

막무가네로 바다로 가자고 한다

양떼를 돌보는 양목사가 가자는 데

나는 순한 어린 양이 되어 순순히 따라나선다

(독백: 큰일이다 목사와 바닷가를 가면 뭘하지 술도 못마시는 친구와)

 

메기 등처럼 검고 미끈한 체어맨 주등이를 주차장 넘어 아득한 바다를 향해 들이대듯 세우고

영화 세트처럼 가볍게 구축된 이층 횟집으로 들어간다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방안 건너편 테이블에서 불륜의 남녀 한쌍이

소주를 세병째 비우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수평선 넘어 번저가는 노을보다 더 고왔다

 

동행한 이목사의 식사 감사기도가 너무 길고 절절하여 나는 하마트면 다음은

애국가 제창순서라고 할 뻔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싶었다

더욱 더 엄숙해진 양목사 왈, 우리가 앉아 있는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의 토끼꼬리라 한다

양목사를 등지고 있던 여인이 힐끗 뒤돌아 본다 얼굴이 회벽처럼 파리했고 눈은 토끼처럼 불타오르고

 

대한민국은 거대한 토끼 우리는 국가가 분양한 토끼 새끼들 토끼처럼 붉어진 눈발에 형제애가 살아난다

꼬리 밟힌 한반도 전신을 뒤틀고 검은 바다가 하얀 거품으로 요동친다

 

몇달전 개천절에 잊어버리고 걷지 않았던  아파트 베란다의 태극기, 밤바람에 하얀 우주 속 음양이 몸을 뒤섞은채 펄럭였고, 사바의 바다가 잠든 어두운 시간 태극기는 혼자서 밤새 펄럭이고 있었다

 

그 날의 어둠 칠포해수욕장 해변에 다시 처들어와 우리를 집으로 돌아가라 다구친다

어둠의 충고를 우습게생각하는 우리는 귀가 하지않고 중학교 동창들의 연말 파티가 열리는

대구 죽전네거리 알리앙스 파티장으로 돌아온다

 

대구는 토끼의 아랫배 우리는 배가 둥글게 통통해지도록 뷔페를 먹고

빨간 눈이 되어 넥타이를 풀었다 토끼처럼 폴짝 폴짝 경쾌하게 가볍게 경박하게 .... 조금은 무게있게

뽕짝,지루박,탱고, 음악에 맞추어 막춤을 추었다

남아있는 앞니를 내보이며 웃는다 더이상 송곳이가 예쁘지 않는 중년,맹구같은 얼굴의 

토끼들이 갑자기 둥지를 그리워한다

나는 선포한다 오늘은 집으로 가지말자고 늘 가야하는 관습의 보금자리로 가지말자고

그래도 집으로가야하는 간땡이 작은 토끼한 마리 식당 주차장에 세워둔 남의 자동차 앞바퀴에 오줌을 눈다

시커먼 자동차 타이어 표정이 갑자기 험상굳게 굳었다 양목사는 서울로 먼저 달아나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토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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