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꽃을 삼킨 너는 누구니? / 최양숙

서 량 2009. 12. 4. 22:34

 

 

꽃을 삼킨 너는 누구니?

                                     

                                                최양숙

 

아침 해를 기다리다  못내 해를 못보고 집을 나서는 가장의 뒤에서

작은 얼굴들이 깨어   이슬 겹겹이 싸안은 가는 손가락을 펴며 배웅한다.

 

지난 화분 가득 올려냈던 것만큼 수북히 올라오는 꽃술 

노란 술에 꽂힌 햇살을 삼아서 현관 앞에 진한 가을을 풀어낸다.


갈볕 채워놓은 소국의 노란 꽃술은 시간이 멈춘 작은 화관속에서

천진한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을 웃는다.

 

현관에 들어서는 구두에 미끌어지는 석양의 꽃그림자는

양복의 구김살마다 얹혀진 하루의 무게를 걸러내는 아내의 눈웃음만큼 보드랍다.

 

종일 문간에서 기다렸던 강아지의 솜털이 반가움에 떨릴

목줄에서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맞추어 꼬리털로 살랑살랑 국화향을 젖는다.

 

지난 누구도 몰래 진한 가을을 가득 뜯어 삼킨 너는 누구니?

겨울 내내 갈볕을 꺼내 쓰고,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젖은 국화차를 마시고 

아내의 눈웃음만큼 부드러운 국화꽃 베개를 베고 

매일 구워낼 화전의 향기에 어지러울 너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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