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잎새와의 사랑

서 량 2009. 10. 2. 21:32

 

번연히 알면서도 은근히 속아주는 속셈으로 더욱 더 심중이 뚜렷해지는 단풍의 시그널이 찌릿찌릿 내게 온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나무잎새와는 진작부터 따스한 혈맥으로 통정해 온 사이지만 잎새의 체온이 차츰차츰 내려가는 낌새를 얼마 전부터 몸소 느낀 바 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어떤 큰 힘이 나와 나무잎새와의 정분일랑 묵사발로 만들어 놓는 순간순간을 통감한다 내 일지기 이럴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아프기 때문에 아픔 자체가 신비로운 진통작용을 일으키는 그런 달콤한 아픔으로 잎새가 땅에 훨훨 떨어져 가만 사뿐 안착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나는 마냥 들뜰 것이다 번연히 알면서도 잎새의 거짓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정황이 지독하게 상쾌하다 저토록 단풍이 지열(地熱)을 힘껏 품에 끌어 안은 채 활활 불타올라 내 혼백을 덮어놓고 들쑤시는 동안만큼은

 

© 서 량 200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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