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인형들의 합창

서 량 2008. 7. 31. 05:10

 

 당신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어른 모습 인형들이 건물 입구에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서 있다. 더러는 중절모자를 쓰거나 트렌치 코트를 입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이들은 대개 도시계획 모형도의 일부분이다. 가로수 잎사귀들 몰래 흔들리는 바람결에 얼굴이 갸름한 여자의 마후라도 함께 펄럭인다. 육중한 국기도 여자의 주름치마도 당신의 벅찬 희망도 같은 리듬으로 대응한다. 내 횡경막도 똑 같이 작동한다.

 

 우리는 자동인형들이다. 얼굴 표정이며 날개뼈 근육이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단아한 모습의 행렬이다. 묵묵히 정면을 치켜보는 정중한 눈동자에 발목이 아스팔트에 튼튼하게 박혀 있는 질이 좋은 플라스틱제품이다. 경건한 인생관이며 알맞은 미적감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벙긋벙긋 벌리면서 당신 귀에 전혀 들리지 않은 노래를 열렬히 합창하는 모조품 인간들이다.

 

 © 서 량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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