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남녀, 혹은 종려나무

서 량 2008. 4. 3. 20:52

                              

 

 

남자건 여자건 종려나무건 그렇게 키가 크면 우선 좀 싱거워 뵌대 왜 있지 작은 고추가 맵대 사람이건 황새건 기린이건 키가 크면 땅바닥에 있는 아담하고 우아한 것들이 눈에 잘 뵈지 않는대 눈과 땅과의 거리가 머니까 당연하대나 사랑하는 남자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몸이 수척해진 얼굴이 갸름하거나 통통한 여자가 뚝뚝 흘린 눈물자죽이나 저 혼자 공연히 절망하는 남자가 탁! 뱉은 가래침 같은 것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는 거야 눈이 저 꼭대기에 있는 것들은 당신과 나와 이 축축한 대지 위에 아담한 토담집 한 채 지어 놓고 같이 살고 싶어요 드높은 구름을 향한 목타는 함성 대신에 먼 우주의 정기가 내 허파꽈리를 나긋나긋하게 애무해 주기를 막연히 원하는 대신에 당신과 내가 등허리 따스한 구들장 아랫목에 아무때나 누워서 킬킬대면서 서로 장난질이라도 하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에요 더 이상 없어

 

 

© 서 량 2008.04.0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봄의 광끼*  (0) 2008.04.19
|詩| 다른 시인을 모방하다  (0) 2008.04.08
|詩| 짐승들  (0) 2008.04.02
|詩| 빵의 생리***  (0) 2008.03.29
|詩| 존재의 노래  (0) 2008.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