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잇몸 수술

서 량 2008. 2. 7. 14:02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지붕위 굴뚝보다 키가 큰 뒷마당 나무에서
더디게 아주 더디게 수박색 이파리가 솟는다
잇몸에 마취기운이 엽록소로 살아난다
넓은 잎사귀거나 키 큰 나무거나
썩어가는 잇몸이거나 개의치 않고
마취기운이 수세미 같은 속살을 파고든다

 

금방 잊혀질 5월 중순에
이제는 나도 슬프고 장엄한 시를 쓰리라
나무도 낮달도 늦은 오후 커피 한 모금도
급하게 읽는 몇 편의 시도
몽땅 허무하다는 느낌으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얼굴이 되리라
사랑의 증표는 대상을
속마음으로 흠뻑 뒤집어씌우는 일!

 

그것은 잇몸을 45도 각도로 째고 들어가
금방 잊혀질 5월 중순에
5자(字)처럼 보이는 물음표 모양 수술도구
정교한 쇠꼬챙이가 박박 긁어내는
잇몸뼈의 장미빛 부활이리라
어제 쓴 시를 다시 읽어 보고 내팽개치면
당장 양탄자가 움푹 파이는 시 한 편의 무게가
화끈대는 잇몸 염증을 꽉 눌러주는 일이리라
창밖 신록이 아프고 무서운 5월에

 

© 서 량 2005.05.1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이상한 소문*  (0) 2008.02.14
|詩| 소프트웨어***  (0) 2008.02.12
|詩| 악기 소리  (0) 2008.01.30
|詩| 기본자세  (0) 2008.01.26
|詩| 티비 안 보기  (0) 200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