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이삭들 후줄근히 고개 숙인
황금 빛 논둑길 풀섶에 서서
생명 처럼 툭 툭 튀는
메뚜기 잡던 시절
혹 가다 누우런 구정물
송장메뚜기가 손에 쥐키면
스르르 놓아 주던 가을
하늘 빛 푸르른 사이다 병에
넣어서 굶기면 밤 사이에
송두리째 똥을 싸는 메뚜기들
향기 좋은 비눗물로
빠각 빠각 닦아 놓은 거울 속에서
똥 없는 메뚜기를 먹는다
아지직 냠냠 참기름 잘 무친
메뚜기 볶음이 주는
이 고소한 가을의 행복
메뚜기들이 툭 툭 날아간
벼 이삭 아직도 흔들려라
손바닥에 간지러운
메뚜기의 푸르른 비단 옷깃이며
무지개 빛 더듬이에 아롱지던 사랑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스러지는
가을 뜨거운 황혼녘 같은
© 서 량 1999.10.15
-- 첫 번째 시집 <맨하탄 유랑극단>(문학사상사, 200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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